덕후, 끊임없이 연구하고 확산하는 '연구자'와 유사성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덕질의 세계에 잠식됐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 그것을 중단(누군가에게 금지당하거나, 자발적으로 그만두게 될 경우 모두를 포함해)하게 되면 급격히 인생에 재미가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한다. 나 또한 늘상 덕질 유지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은 한동안 멈췄었고 나는 의도치 않게 강제적 휴덕을 경험한 바 있다. 이뿐이랴. 덕질이라는 것은 여가의 일종이기 때문에(덕질이 생계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으면 덕질 또한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한번 덕질을 경험한 사람이 이것을 중단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최애가 새 앨범을 내거나, 새 필모그라피를 발표하거나, 새로운 단행본이 나오거나, 소셜 미디어에 소소한 정보를 공유하던 때가 그립기 마련이다. 바쁘게 살아가며 덕질의 즐거움을 잊어갈 때쯤, 가끔 오래된 덕질의 대상들을 우연히 일상에서 발견하면 그 그리움이 배가 된다. 그때마다 당시의 행복을 다시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게 되고 또다시 우연하게 찾아올 덕통사고의 순간을 기다리는 게 결국 덕후의 숙명이다. 심지어 덕질 대상을 찾는 건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언제쯤 나에게 그토록 마법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올지, 그저 담담히(실은 절박하게)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관람했다. 태어나 발레 공연을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연히 지인이 찍은 ‘호두까기 인형’의 커튼콜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커튼콜에 등장하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뿐만 아니라 공연의 무대가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보게 됐고, 결국 티켓을 결제했다. 공연장은 전 연령대로 북적거렸다. 내가 이전까지 봤던 클래식 음악 공연, 혹은 뮤지컬 공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중간 중간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기술이 나올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자주 터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왕자와 마리가 오케스트라에 맞춰 환상적인 파드되를 선보일 때쯤, 나도 모르게 내년 5월에 있을 지젤 공연을 찾아보게 됐다.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기쁨이란 놀랍도록 사람을 생기 넘치게 만드는 법이다.

가끔 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 다시 말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 일이 덕질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미디어 연구자들이 있고, 그들의 저서가 새로 나올 때마다 꾸준히 찾아보고, 그들의 언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것들을 학생들과 동료 연구자들에게 전달하며 이들의 연구관을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덕후는 모두 연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서로 소통하며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것. 덕질은 그렇게 사람의 세계를 넓히고, 놀랍도록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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