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자산운용, 지주사 SK 상대 자사주 소각제안 주주서한 발송
이채원, ESG 들고 돌아온 1세대 가치투자가 “지주사 할인에 동의 안한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사진=이승용 기자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사진=이승용 기자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라이프자산운용이 SK를 상대로 자사주 소각과 리스크관리위원회 신설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내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지난해 ‘가치투자 1세대’ 이채원 전 한국투자밸류운용 대표가 다름자산운용을 인수해 설립했고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이 의장은 과거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이끌며 가치투자 1세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성장주 시대가 열리면서 곤란도 겪었다. 이번 주주서한 발송을 놓고 '이채원의 명예 회복전'이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의장은 시사저널e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주주서한 발송 배경과 ESG 시대에서 가치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 의장은 앞으로도 계속 대주주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행동주의로 접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다. 왜 SK를 선택했나?

소액주주와 대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주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주사들은 저평가 받더라도 오너들이 주가가 오르기를 원치 않는다. 상속세 등의 문제로 우리나라 회장 중에 자기 회사 주식 저평가라고 얘기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SK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주가가 저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업가치가 올라야 한다고 말하는 회사다.

-국내 증시에서 외면받는 지주사를 주목했다.

나는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주사는 프리미엄을 받을 가치가 있다. 지주사가 대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여러 지배구조 개편을 살펴보면 결국 지주사한테 유리하게 진행된다. 대주주와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주식이 지주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뒷통수를 맞을 일이 없는 회사다.

또 하나는 SK가 다른 지주사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SK는 다수의 성장 산업을 거느리고 있다.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왔듯이 SK는 2017년 이후 연 11.5%의 주당 순자산가치(BPS) 성장을 창출한 회사다. 버크셔해서웨이의 BPS 성장률이 연 12% 수준임을 감안하면 SK는 지주사가 아니라 투자회사로서의 역량을 증명한 셈이다. SK는 한국의 버크셔해서웨이다. 이렇게 인수합병을 잘하는 회사가 있는가.

버크셔해서웨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6인데 SK는 0.6에 불과하다. SK를 투자회사로 본다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한 가치를 구현시킬 방법으로 SK에 주주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 SK가 보유한 총 4조6000억원 규모 자사주 가운데 10%를 소각하고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신설하라는 요구를 했다.

회사가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사주를 이용해 전략적 파트너를 구할 수 있고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소액주주들이 오버행 이슈를 우려하고 있으니 일부를 소각하자는 것이다. 이론상 10%를 소각하면 주가는 그에 비례해서 상승해야 하지만 주주우선정책을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프리미엄이 발생해 그 이상 효과가 날 것이다.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최근 SK가 급격히 성장하고 사업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서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는 판단에 제안했다. 재무상황 등을 특별관리하자는 제안이다.

-지난해 엑슨모빌에 주주제안을 했던 환경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처럼 기관투자가들의 지지를 바라는 것인가?

기관 투자가보다는 소액주주 지지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다. 우리는 대주주와 싸우지 않는 우호적 행동주의를 표방한다. 회사의 본질을 바꿀 좋은 ESG 관련 제안을 회사에 하고 이를 받아들이면 컨설팅, 자금조달 등을 도와주면서 장기적 파트너로 같이 가자는 것이다.

- SK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함으로써 속칭 '어그로'를 끄는데 성공했다. 화려한 데뷔전을 기획했나?

우리는 가능하면 일단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한다. 이전까지 소리 없이 진행한 투자 건도 몇 건 있다. 근데 비공개로 진행하면 대주주가 무시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가 대주주와 우호적인 ESG 행동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 적극적으로 응해주는 것은 많지 않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좋은 제안을 들고 가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대주주들은 상속세와 지분 확대 가능성 등의 이유로 본인 주식의 가치가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많다. 다행히 SK는 이번 주주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비교적 빠르게 복귀했다. 가치투자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닐까?

2000년에서 2013년까지 14년간 가치투자 사이클이 아주 강하게 왔다. 하지만 이후 성장주 시대가 왔다. 당초 내 예상보다 성장주 시대가 무척 길었다. 고객들의 불만도 있고 누군가가 또 책임을 져야 하기에 결국 물러났다.

마침 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물러나고 나니까 한국투자밸류운용에서 가치투자했던 종목들의 수익률이 고공행진했다. 그런데 만약 물러나지 않았다면 수익률이 괜찮아지니 또 대표를 계속 맡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계기로 생각한다. 

1년은 쉬려고 했는데 내 수제자이자 애제자인 강대권 대표가 직접 찾아왔다. 같이 한번 해보자고 했다. ESG를 들고 가치투자의 부활을 한번 꿈꿔보자, 한 단계 진화된 형태의 가치투자를 해보자는데 동의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 성장주가 득세하던 시절에도 ESG를 들고 가치투자를 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창업 후 한국금융지주에서 펀드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김남구 회장님에게 한번 해보겠다고 말씀드리니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사실 인생에서 잘 나갈 때 수십 번이나 몇십억원의 연봉을 내미는 스카웃 제의를 수도 없이 받았다. 하지만 눈도 깜빡 안 했다. 의리 때문이다.

나는 평생 한투맨이다. 이직이 아니라 창업 형태이기에 한국투자금융그룹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한투를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분이 있는 자회사에 근무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