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배터리강국 한국·일본, 자국 車·배터리 기업 간 협력강화 움직임
“脫 K배터리” 유럽에선 배터리 내재화 도전···美 GM·포드 “親 K배터리”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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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반도체 수급난에 시달리는 글로벌 완성차업계가 또 다른 수급난을 앞두고 있다. 전기차 핵심기술인 배터리다.

전기차 보급이 빨라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넘을 전망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겹치면서 수급난이 심화됐던 반도체와 달리, 배터리 수급난은 시장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자연히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업체별 대비책에도 차이를 보인다.

8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의 주요 생산라인이 멈춰서고 있다. 이번 수급난은 예견된 참사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발하면서 주요 업체들이 수요가 급감할 것을 예상해 차량용 반도체 주문량을 줄였지만, 소비는 예상외로 빠르게 진작됐다. 추가주문을 실시했으나 이번엔 반도체 공장이 문제였다.

올 2월 미국을 강타한 북극한파가 미국 남부지역까지 몰아쳤다. 텍사스주 소재 삼성전자 텍사스공장이 이로 인해 가동 중단을 맞게 됐다. 지난달에는 일본 르네사스와 대만 TSMC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완성차업계의 수요예측 실패와 예상치 못한 변수가 겹쳐 반도체 생산차질이 가속화된 것이다. 반도체 공급에 제동이 걸렸고, 급기야 차 생산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반도체 대란 진정에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며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업체는 실익이 큰 사업 분야가 아닌 까닭에 공장증설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현행 공급망이 정상화돼도 지속적인 수급불균형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기차 보급 속도와 더욱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분야는 배터리다. 주요 배터리업체들은 선제적으로 수주한 뒤 생산라인을 신설하거나 증설한다. 최근 일부 업체들이 선제적인 증설에 도전할 뜻을 내비쳤지만, 배터리 증산 속도보다 수요상승이 더욱 속도를 내는 게 사실이다. 당초 2025년을 전후로 이 같은 수요·공급 역전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기차 보급 확대로 예상보다 빠르게 문제시 될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완성차 업계는 예상가능한 배터리 수급불균형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이다. 배터리 업체와 합작사(JV)를 설립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독점적인 공급처를 확보함과 동시에 해당 배터리업체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부족분을 보강할 심산이다.

다만 협력을 구축함에 있어서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글로벌 브랜드는 미국·유럽·일본 등에 집중됐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주요 브랜드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이들 중 한국을 포함한 유럽·일본 등에서 이 같은 경향이 도드라진다. 특히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배터리 업체를 동시에 보유한 한국·일본 등은 해당 경향의 중심지로 꼽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과 차례로 만남을 가졌다. 네 총수들이 한 데 모이는 비공식 회동 자리도 마련됐다. 이 역시 정 회장이 주축이었다는 전언이다. 재계 1~4위 그룹 총수들이기도 한 이들 중 완성차 사업을 주력하는 정 회장을 제외하면, 세 총수 모두 배터리 사업을 운영 중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정 회장과 각 그룹 총수들과의 만남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장에서 이뤄졌다. 이들 3사는 글로벌 배터리시장 상위 5개사에 이름을 올린 회사들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배터리 수급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현대차가 LG·SK 등을 통해서만 배터리를 공급받아 온 탓에 삼성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다. 오랜 우호관계인 LG와 JV설립이 논의 중이며, SK와도 폭넓은 사업협력이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그룹과 글로벌 완성차 1위를 놓고 경쟁하는 일본의 토요타는 파나소닉과의 관계십을 강화 중이다. 전기차 판매 1위 테슬라에 독자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하던 파나소닉은 테슬라가 공급선을 다변화함에 따라 토요타를 비롯한 자국 기업들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작년 10월 토요타와 파나소닉은 배터리셀 JV를 설립했으며, 최근 이곳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탑재될 전기차 출시계획이 공개됐다.

유럽은 동아시아 3국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유럽연합(EU)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통한 실익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이 같은 EU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곳이 폭스바겐그룹이다. 20% 지분을 투자하고, 별도의 JV를 설립한 스웨덴의 신생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안정적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2019년 폭스바겐은 LG·삼성·SK 등 국내 3사와 중국의 CATL 및 노스볼트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받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각형배터리’ 비중을 8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변화를 예고했는데, 각형은 LG·SK가 채택하지 않는 제작방식이다. 사실 상 ‘탈(脫) K배터리’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이 나온다.

현재 폭스바겐그룹은 노스볼트와 유럽 내에 6개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복안이다.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수급불균형을 대비하겠다는 행보다. 다만, 노스볼트가 기존 배터리업체들의 특허를 피해 완제품 생산에 이를 수 있을 지, 글로벌 1위 폭스바겐그룹의 수요에 걸맞은 배터리 양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공장설립 후 연산량에 걸맞은 수율(완제품비율)능력을 겸비할 수 있을지 등이 우려점으로 꼽힌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자체 배터리업체가 부족한 미국 업체들은 K배터리와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대표적인 곳은 제네럴모터스(GM)다. LG에너지솔루션과 JV설립한 뒤 공장을 신설 중이다. 경쟁사 포드의 경우 SK이노베이션과 JV설립이 유력하다. SK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기밀 침해 소송에서 패함에 따라 추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SK이노베이션이 오는 10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치하거나, LG에너지솔루션과의 위약·보상금 협상을 마무리 짓게 돼 미국 배터리사업 불확실성이 해소될 경우 JV설립이 속도를 낼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포드와 SK의 전기차·배터리 협력이 결렬될 경우 삼성SDI 등과의 연합전선 구축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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