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 생산 공장 잇따른 가동 중단···재고 확보에도 어려움
수요예측 실패·한파 및 화재 사고 영향에 어려움 가중···뾰족한 대책 없어 완성차업체들 난감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완성차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이미 일부 완성차 기업들의 공장은 일시 중단된 바 있고, 차량용 반도체 기근에 따른 자동차 생산 차질 문제는 올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폴크스바겐, 재규어랜드로버, GM(제너럴모터스), 메르세데스-벤츠 등 수입 완성차 기업들과 현대자동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밝혀온 ‘전기차 전환 원년’이라는 올해 목표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차량용 배터리 품귀 현상 영향으로 완성차 기업들이 자동차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 GM, 폴크스바겐, 토요타, 혼다 등 완성차 기업들은 일부 공장 생산을 중단했고 전기차 시장에서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테슬라도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약 4~6개월치 차량용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기업들도 현 상황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해 물량을 조절하며 재고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향후 자동차 생산과정에 지장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차량용 반도체 출하량이 줄었고, 완성차 기업들도 자동차 판매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며 주문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는 신차를 중심으로 증가하는 등 수요 예측이 빗나갔고, 완성차 기업들은 뒤늦게 차량용 반도체 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해법은 부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미국 텍사스주의 한파 영향으로 NXP·인피니언 등 차량용 반도체 기업 공장의 가동이 멈췄고, 지난 19일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일본 이바라키현 나카 공장도 화재발생으로 생산이 중단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은 NXP(21%), 인피니언(19%), 르네사스(15%), 텍사스인스트루먼트(14%), ST마이크로(13%) 등이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약 55%에 이르고 핵심부품인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자동차 기능을 제어하는 반도체)의 생산량은 약 50%에 달한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중단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으로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SMIC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 등도 완성차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최근 대부분의 자동차는 전자화를 위한 IT 기술·시스템이 탑재돼 반도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자동차 성능이 발전할수록 이에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 개수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완성차 기업들이 본격 개발·생산에 총력을 쏟고 있는 전기차에는 약 500개 정도의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하고, 자율주행 등 기술이 더해질 경우 2000개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자동차의 경우 200~400개 정도의 차량용 반도체가 탑재됐다.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판매되는 전기차 모델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차량용 반도체 수입 의존도가 98%에 이르는 한국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반도체 공급망 점검을 긴급 지시했고, 한국 정부도 지난 4일 민관합동대책회의를 격주로 열며 상황을 점검하며 대책을 찾고 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시장 자체가 진입장벽이 매우 높고, 생산시설을 구축하더라도 생산·양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현실적인 대책은 부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반도체와 달리 차량용 반도체는 안전성 여부가 매우 중요하고, 이에 제조·품질 관리가 까다로워 경쟁력 있는 국내 차량용 반도체 개발 자체가 당장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량용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이는 ‘12인치 웨이퍼 공장’보다 구식 설비라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8인치 웨이퍼 공장’을 확대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점도 상황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