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적 처벌은 해결책 아냐···예방 시스템 강화에 방점 둬야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정인이’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었다. 정인이가 겪었을 너무나 큰 고통에 국민적 분노가 불이 붙었고, 화살은 정인이의 양부모와 경찰을 향했다. 양모에게 적용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살인죄로 바꿔야 한다는 국민청원에도 26만명이 서명했다. 여야는 3일 만에 11개의 아동학대 방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형량 강화’에 중점 둔 법안도 상당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가 아동 학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진단한다. 책임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은 사후적인 문제로, 피해아동을 구하기 늦은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처벌을 강화할 경우 오히려 입증 책임도 무거워져 기소율이나 무죄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동학대 사건을 다수 접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 비용을 사후적 책임자를 색출하는 데 소모하면 결국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는 실종되고 문제를 더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점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국회입법조사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서 크게 8가지로 분류해 우리나라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정리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신고접수 측면에서 경찰의 인식부족 ▲조사 측면에서 학대행위자, 피해아동, 관계인 등에 대한 경찰의 대응 ▲사례판단에서의 기준 모호성 ▲피해아동의 분리보호 인프라 부족 ▲서비스 제공 단계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동의 문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업무과다와 질 저하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의 비경제성 ▲지자체 인력확보, 사례판단 업무수행 등 대응체계상의 문제 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개선방법으로 ▲신고의무를 모든 국민으로 확대 ▲학대행위자의 조사거부 벌칙 실효성 개선 ▲사례판단에서 형량 위주가 아닌 행위의 동기 및 일어난 행위를 기준으로의 보완 ▲사법처리 절차 공무원에 대한 교육 강화 ▲심리치료 서비스 전문화 및 아동학대위험도 평가척도 개선 등을 제안했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업무량 및 근로여건 개선 ▲국가아동정보시스템의 공유방식 개선 ▲아동보호전문기관 통합모델 설치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중의 관심이 국회를 움직이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반복된다. 경쟁적인 입법 발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고 미봉책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 정인이 사건이 복지의 차원에서, 가족의 차원에서 개선할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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