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실패한 북핵 문제 ‘정의와 최종상태 남북미 이견’
비핵지대는 국제적으로 통용된 정의와 목표 이미 존재
비핵지대, 한반도 핵무기 제거·핵보유국 남북 안전보장 제공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란 표현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으나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인지 정의와 목표에 대해 남북미가 합의한 것이 없다. 그래서 실패했다. 비핵지대(NUCLEAR WEAPONS FREE ZONE)는 국제적으로 통용돼 온 손에 잡히는 정의와 목표가 이미 존재한다. 한반도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자.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고 미·중·러·영·프 등 공식적 5대 핵보유국이 추가의정서에 가입하는 것이다. 남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은 폐기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들은 남북한을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고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을 국제법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30년간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 해결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북미 간의 현격한 동상이몽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정의와 최종 상태에 대해 의견 차가 컸고 남북미가 이를 합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미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정의와 목표가 존재하는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자고 했다. 한반도 비핵지대가 한반도 핵 문제 해법의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에 따라 평화 분위기로 들떠 있었던 2018년에는 비핵화와 평화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0년 남북 관계가 후퇴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정체된 어려운 상황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반도 비핵지대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 대표는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 해결에 힘써왔다.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비핵화의 최후’, ‘핵과 인간’, ‘사드의 모든 것’, ‘MD 본색’ 등의 책을 썼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2006년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행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지난 12일 평화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사진=최기원 피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사진=최기원 PD

하는 일과 목적은?

평화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를 하고 있다. 1999년도에 생겨 21년 됐다. 90년대 후반 북한에선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한국에서도 외환위기가 발생해 많은 이들이 실직과 소득 감소로 고통을 받았다. 왜 한반도 사람들의 삶이 이처럼 고달파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하루빨리 이 땅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이 전쟁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사용하는 막대한 자원을 한반도 주민의 삶을 위해 돌린다면 좀 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에 기여하고자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문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가 최근 후퇴했다. 왜 그런가?

근본 원인은 북한과 미국 간 이익의 불일치가 컸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 국가이면서 동시에 미국과 관계를 풀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경제 제재와 정전체제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북미가 수교를 맺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반면 미국은 굳이 북한과 친하게 지낼 이유가 별로 없다. 한반도가 오랜 기간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정전체제에 있으면서 오래 동안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미국의 주류 세력의 반감이 컸다. 최근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도 나와 있듯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개인기로 상황을 돌파하려 했을 때 볼턴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보이지 않게 저항을 했다. 2018년 평화 기대감이 높았으나 미국 주류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했고 이러한 근본 제약을 뚫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로는 김정은을 신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북제재를 강화해왔다. 말로는 사랑한다면서 계속 괴롭히는 데이트 폭력을 해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실책은 너무 단계적 해법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단계적 접근법은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간절히 원할 때는 가능하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 전환, 대북제재 해결, 북미수교를 수반한다. 주한미군 주둔 등 한미동맹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못마땅해 하는 미국 주류의 반격에 취약한 접근법이다. 김 위원장은 더 과감하게 최종단계로 간주됐던 북한의 핵 폐기와 관련해 폐기는 나중에 하더라도 폐기 시한과 방식 등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상응조치도 테이블에 올려놓는 협상을 선택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의 동상이몽이 현격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양측의 비핵화는 같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해법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오늘날 한반도 정세가 또 교착상태에 빠졌다.

비핵화 프로세스는 새롭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나?

미국이 정말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면 선 비핵화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걸맞는 상응조치를 취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해야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것은 그림의 떡을 보여주면서 핵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한계가 분명하다. 미국은 북한의 긍정적 조치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대북제재를 하나둘씩 풀어가야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

북한도 지나치게 단계적 해법에 집착하면 지난 30년처럼 실패할수 밖에 없다. 통큰 접근이 중요하다.

문 정부는 중재자나 촉진자 등 제3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주체적 입장에서 북미 양측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창의적 해법 제시가 중요하다.

남북미 간 합의되지 않는 비핵화 대신 '비핵지대'를 해법으로 제안했다.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인지 정의와 목표에 남북미 3자가 합의한 것이 없다. 2018년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로 했는데 정작 비핵화가 뭔지에 대해 합의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뿐 아니라 화학무기, 생물무기, 모든 탄도미사일과 이중용도 프로그램까지 폐기가 비핵화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 무장해제 요구라면서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 포기 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도 근원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입장 차이가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반도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자는 것이다. 비핵화는 합의된 정의도 없고 목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핵지대는 국제적으로 통용돼 온 정의와 목표가 이미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헤맬 것이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 존재해온 비핵지대를 한반도 핵문제의 해법으로 삼아야 한다.

남북한이 지대 내 국가로서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고 미·중·러·영·프 등 5대 핵보유국은 추가의정서에 가입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란 한반도 내에는 핵무기가 존재해선 안 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남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은 폐기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다놔도 안 된다. 핵보유국들이 남북한에 안전보장을 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들은 남북한을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고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것을 국제법적으로 약속하게 만든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에는 남북이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시설을 갖지 않는 것도 포함돼야 한다. 이는 1992년 남북이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담긴 내용이다. 남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강력히 보여줄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어떤 실효성이 있나?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비핵화에 대한 정의와 목표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이되 구체적인 합의와 단계적이되 복합적인 이행을 담은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이를 위한 대전제 중 하나가 한반도 비핵화 정의와 최종 상태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30년간 짧게는 2년간 잘 안됐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존재하고 있고 확대돼 온 비핵지대를 활용해야 한다. 2020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비핵지대가 6곳이며 116개국이 속해있다. 지구 면적의 절반 이상이 비핵지대다. 유엔 문서에도 비핵지대란 무엇인지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를 잘 활용하는 게 실사구시다. 비핵지대를 북핵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자 최종 목표로 삼으면 프로세스를 짜는데 용이해진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대북제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은 비핵지대를 통해 손에 잡히는 비핵화를 추구할 수 있기에 제재 문제에 유연해질 수 있다. 동시에 한반도 비핵지대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기에 북한이 이 조약을 위반하면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더 강력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한반도 비핵지대는 비핵화가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명예로운 선택이 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이 당사국으로 참여하는 주체적인 해법이다.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은 북미 중심으로 이뤄졌고 북미 관계에 따라 남북관계도 악화됐다. 한반도 비핵지대 당사자인 시민들과 정부가 한반도 핵문제를 비핵지대로 풀자는 것을 국내외에 많이 알리고 주장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지대 추진 시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나?

미국은 한반도 비핵지대를 흔쾌히 동의하지 않겠지만 동시에 이를 일축할 수도 없다. 미국은 비핵지대를 지지한다고 줄곧 말해왔다. 1995년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을 채택할 때 비핵지대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비핵지대는 이미 국제 규범화 됐기에 미국이 부정할 수는 없다.

비핵지대보다 더 좋은 북핵 해법이 있으면 제시해보라고 미국에게 말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이 탐탁지 않은 사람이 분명 존재하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 행정부와 대통령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 30년간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정치적 이익이 분명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의 입장이다. 한반도 비핵지대 당사자는 남북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지대가 국제사회에 공론화되면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와 협력을 받을 수 있다. 116개 국가가 비핵지대에 속해있고 유엔 안보리에서도 비핵지대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이미 있다.

사진=최기원 피디
사진=최기원 PD

남북관계가 후퇴했다. 정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남북은 냉각기다. 냉각기를 슬기롭게 관리해서 관계 악화로 이어지지 않고 관계 개선을 위한 생산적 진통 과정이 되도록 관리해야한다.

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해야한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 추진과 관련해 당장 군축이 어렵다면 군비 증강을 조절해야 한다. 최근 나온 국방중기계획을 보면 무려 301조원을 5년간 투입해 사상 최대 군비증가에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한국 군사력은 문 정부 출범 때 세계 12위에서 올해 6위로 올랐다. 북한은 18위에서 25위로 떨어졌다. 군비 증강을 자제할 때가 됐다. 지난친 군비 증강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부담이 된다.

한미훈련은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축소된 형태라고 하는데 북한이 축소된 형태로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우리도 이해 할 수 없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했는데 미국이 약속 지킨 게 뭐가 있느냐는 불만이 있다. 군사훈련중단이 그 약속 중 하나였다. 이것이 안 지켜지면 북미,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은 공동의 적인 북한을 공동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2018년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이 바로 북한과 공동의 친구가 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면 안 된다. 기존 방식대로 군사훈련하고, 계속 무기 사들이고 하면 의미가 없다. 북한과 적으로 대치하던 상황을 바꾸고자 결심했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나둘 해나가야 한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대북 억제력 약화되지 않나?

대북 억제는 북한이 우리를 공격해서 얻는 이익보다 우리의 보복으로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이다. 우리를 공격할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레이더나 위성으로 바로 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군사적 움직임을 모른다. 탐지 정보 능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고성능 망원경으로 보고 있고 북한은 안대 끼고 있는 것과 같다. 더구나 우리는 세계 최강 미국과 동맹관계다. 대북 억제 능력은 충분하다. 지나치면 오히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단거리 발사체에 의존하게 만들어 우리 안보에 위협을 준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심각하다. 사드 사태 등 우리가 여기에 휘말린다.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제 1원칙으로 ‘미중 간 갈등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밝혀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원하지 않는 분쟁에 절대 연루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이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미국에게 솔직히 우리는 한미동맹도 중요하나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말해야한다. 지난 500년간 동아시아의 큰 전쟁이 이 땅에서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벌어졌다. 정부는 또다시 한반도가 강대국들 다툼에 희생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사드를 중국용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거나 제주해군기지를 유사시 이용하는 등을 못하게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 성공할 수 있나

한반도 평화가 올 것 같은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90년대 초반에도 그랬고 2000년 최초 남북정상회담, 2차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 및 북미 대화가 잘됐던 2007년, 2018년에도 그런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물거품이 되거나 물거품 위기에 처했다.

왜 그런가. 잘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는 현 상태 유지를 선호하는 현상 유지세력이 있고 평화적으로 현상을 바꿔보자는 세력도 있다. 이 두 세력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 있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번번이 반작용에 제압 당했다. 이게 되풀이 됐다. 이것은 한반도 현상 유지 세력의 실력과 절실함이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실력과 절심함 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정말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실력을 제대로 키우고 절실함을 갖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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