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최후통첩 “11일까지 인수여부 결정하라···파기 책임은 현대산업개발”
계약 이행 땐 자금난 불가피···정부심기 건든 불이행, 본업 건설에도 여파
“대기업도 부담스러워했던 매물···계약서 사인한 인수결정 주체 책임져야”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그래픽=시사저널e DB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그래픽=시사저널e DB

HDC현대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위로 그칠 경우 정부·국책은행 등과의 대립이 불가피하고, 이행할 경우 엄청난 재무적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무리한 인수 추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일각에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책임론도 대두되는 모양새다.

5일 재계 등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최근 현대산업개발 측의 재실사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계약결렬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양측은 계약불이행의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고 맞서고 있다. 채권단은 현대산업개발의 인수의지에 의구심을 표했으며, 반대로 현대산업개발은 제대로 된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인수계약 체결 당시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올 초 확산되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여행수요가 급감하면서 항공사들의 경영난이 심화됐다.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일순간 계륵이 됐다. 최근 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하려는 행보를 걸어왔다고 업계는 해석했다.

문제는 현대산업개발 본업이 건설사라는 점이다. 건설사 특성 상 관계당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건설업계의 주무부처는 국토교통부다. 국토교통부는 건설업계뿐 아니라 항공 등의 운송사업 유관부처다. 지난달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현대산업개발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계획대로 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일각에선 애초부터 부채부담이 큰 매물이던 아시아나항공을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한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비록 코로나19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개입했다 하더라도, 경영적 오판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는 비판이다. 또한 이는 정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진 이유기도 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계약을 이행했다간 회사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에 계약이행에 주저하는 현대산업개발 입장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번 계약파기는 현대산업개발 측에 있다고 본다”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산업개발의 변심이 계약결렬의 가장 큰 이유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결과적으로 책임감·대외신임도 등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매력적인 매물임엔 틀림없지만, 코로나19 발발 이전에도 부채부담이 컸다”면서 “대기업들도 쉬이 나서지 못했는데, 항공사 특유의 현금창출능력을 높이 평가해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선뜻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꼬 분석했다. 또 “현금창출능력에 제동이 걸리고 부채부담이 커지면서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지난 2008년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다 발을 뺀 전례가 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그룹은 이행보증금 명목으로 3150억원을 지급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며 계약이 무산됐다. 이후 한화 측은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노조의 반발 등으로 확인실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한화그룹과 산업은행은 이행보증금 반환여부를 놓고 장시간 법정에서 다퉜다. 1·2심 재판부는 한화그룹에 전적으로 계약불이행 책임이라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확인실사 후 최종계약하기로 한 상태서 산업은행의 일방적 요구로 실사 없이 최종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는 등 양측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결국 한화는 보증금의 62%를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의 인수계약이 파기될 경우 비슷한 전개가 예상 가능하다. 다만 한화 때와 유사한 결과가 나올 지는 미지수다. 지난 3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7주 동안 엄밀한 실사를 실시한 상황에서 변화된 것만 점검하면 되는데, 지속적으로 재실사를 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제기한 바 있다. 노조의 반발에 묻혀 실사기회를 갖지 못한 한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편, 산업은행은 현대산업개발에 오는 11일까지 인수의사를 확실히 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까지 인수결정을 내리지 않을 경우 계약은 파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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