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안정펀드 가동 및 전액공급방식 RP매입 실시···신용경색 우려 일부 완화
코로나19 사태 종식 전까지는 높은 변동성 불가피···실물 지표 발표 ‘변수’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연합뉴스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연합뉴스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 방안이 잇따라 시행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뛰어넘는 대규모 대책에 시장 전문가들은 상당한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조치들이 단기 효과에만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다수 제기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실물 지표로 나타나게 되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다시 심화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20조원 규모 채권안정펀드 가동 예정···한은, 사상 최초로 전액공급방식 RP매입 시행

3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달 2일부터 채권안정(채안)펀드를 통해 3조원 규모의 회사채, 우량기업의 기업어음(CP) 등을 매입할 예정이다. 이를 시작으로 정부는 우선 10조원 규모의 채안펀드를 가동한 후 10조원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앞서 지난 30일부터 단기자금시장 유동성 공급을 위해 CP·전자단기사채(전단채)·여신금융회사채(여전채) 매입을 시작했다. 정부는 산은과 신용보증기금의 ‘공동 CP 매입기구’ 신설도 추진 중이다. 내달 1일부터는 정부의 ‘초저금리 금융 지원 패키지’ 의 후속 대책으로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취급하는 1000만원 직접 대출도 운영된다.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전액 공급 방식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시행하기로 했다. RP는 채권 발행자가 일정 기간 후에 원금에 금리를 더해 되사는 채권으로 한은이 시장에 돈을 푸는 대표적인 수단 중 하나다. 제약 없이 모집 전액을 배정하는 전액 공급 방식은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도 실시된 적이 없다.

한은은 내달 2일부터 6월 말까지 3개월 동안 매주 모집금리를 공고해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금리는 기준금리(0.75%)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를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7월 이후에는 그동안의 입찰 결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이번 조치의 연장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또한 한은은 공개 시장 운영 대상 기관에 증권회사 11곳을 추가하고 RP 매매 대상 증권에 8개 공공기관 특수채를 새롭게 포함시켰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 방침으로 약 50조원 규모의 자금이 풀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공급됐던 자금(28조원)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연합뉴스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연합뉴스

◇시장 전문가 “단기적 안정 효과 기대”···실물 지표 발표 시 금융 불안정성 심화 우려

이러한 정부와 한은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방안은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정부와 한은의 적극적인 시장 안정 대책에 힘입어 지난 19일 128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1217원대로 하락했다. 같은날 1457.64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도 31일 1754.64까지 상승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4월 유동성 부족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 조치는 단기 유동성 부족 우려를 상당 부분 완화시켜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에 이어 정부가 추가로 경기 부양책을 발표할 공산이 크다는 점도 국내 신용경색 우려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진단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 역시 “정부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부양책을 발표한 이유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피해 규모와 기간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채권시장의 신용경색 및 증권시장의 과도한 변동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을 전망된다”고 진단했다.

은행권 대출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의 RP매입으로 은행들이 유동성을 확보하면 아무래도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도 늘어날 것”이라며 “대출 지원의 기준도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조치들이 단기 효과 이상의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돼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 종식되지 않는한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의 여파가 반영된 실물 지표들이 발표되기 시작하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다시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당국의 안정 조치가 효력을 발휘할 경우 시장의 초점은 경제지표로 옮겨갈 것”이라며 “악화된 경제지표는 발표될 때마다 시장금리 하락 등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아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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