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징역 1년6월→2심 무죄···“적법절차·영장주의 중대한 위반”
“위법 증거 배제하면 피고인이 협박 글 작성했다 인정할 수 없어”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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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딸을 성폭행하겠다는 등의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압수수색 절차와 영장주의를 위반해 수집된 증거는 위법하다는 취지로, 법원은 수사기관의 증거 확보 과정을 질타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2일 협박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38)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는 지난 2015년 7월7일 밤 10시20분쯤 백악관 홈페이지 민원코너에 접속해 ‘오바마 대통령과 영부인 미쉘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둘째 딸을 성폭행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혐의를 받았다.

그는 또 다음날 새벽 2시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테러선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울에 있는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를 다시 공격해 죽일 것이다”라고 쓰는 등 협박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글에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생화학무기를 폐기할 때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를 처단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사건 발발 당시 주한미대사관 측은 미국 정부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구하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경찰의 압수수색···편의적인 노트북 원본, 이미징 파일 반출

경찰은 2015년 7월 13일 오후 7시41분 압수수색 영장에 근거해 이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 했다. 경찰은 먼저 이씨의 방에 있는 데스크탑 컴퓨터와 서재에 있는 데스크탑을 살펴보았지만, 범죄사실과 관련된 정보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이씨의 어머니로부터 부엌 옆쪽 방에 있던 노트북을 제출받아 탐색한 끝에 이 사건 협박글과 관련된 캡쳐파일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노트북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따로 선별하지 않은 채 그 전부를 이미징하는 방법으로 복제했고, 노트북 이미징 파일과 함께 다른 하드디스크 4개에 대한 이미징파일, USB원본 1개와 노트북 원본을 압수하고 서울청 사무실로 반출했다.

경찰은 이튿날 새벽 1시32분 압수목록을 작성하면서 압수경위란에 ‘피의자 노트북이 프랑스 시간대역으로 설정되어 있고 가상컴퓨터 프로그램인 VMware가 설치되어 있는 등 시간 정보를 명확히 확인하고 가상컴퓨터 사용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디지털증거분석 시 노트북 원본 자체가 필요해 부득이하게 노트북 자체를 압수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압수목록에는 노트북 원본과 하드디스크 4개에 대한 이미징파일, USB 원본 1개만 기재되어 있고 ‘노트북 이미징 파일’의 기재는 누락됐다. 경찰은 누락된 노트북 이미징파일로부터 전자정보를 탐색해 출력, 복사했고 디지털 증거분석의 편의를 위해 노트북 이미징 파일을 임의로 재복제해 활용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찰은 14일부터 23일 디지털증거분석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기까지 압수물 분석을 하면서 이씨와 이씨의 어머니, 변호사 등을 참여시키거나 이들에게 일시와 장소를 알리지 않았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8월 3일, 노트북 설정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이 씨와 변호인의 참여하에 노트북의 봉인을 해제하고 전원을 켜 설정시간 등을 확인했고, 전원을 종료한 후 다시 새롭게 이미징 파일로 복제하는 도중 오류가 발생하자 다음날 이씨나 변호인 참여 없이 이미지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 법원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중대하게 위법···2차 증거들 모두 배제”

1심은 이 사건 글을 작성한 범인이 이씨이고, 그가 수사 단계부터 재판과정까지 시종일관 변명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협박글이 피해자들에게 전달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협박’이 아닌 ‘협박 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반전은 2심이었다. 2심은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했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와 이를 근거로 한 2차 증거들을 모두 배제한다면 이 사건 협박글을 작성한 범인을 이씨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2심은 이씨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영장의 범위를 벗어나 이씨의 노트북 자체를 압수하고 범죄사실과 무관한 다수 전자정보를 탐색, 출력, 복사한 점 ▲이씨의 노트북을 반환기한 내에 돌려주지 않은 점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고인의 참여권을 배제한 점 ▲압수 상세 목록을 피고인에게 제공하지 않은 점 등을 위법하다고 봤다.

2심은 이 판단을 전제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 중 위법하게 압수한 전자정보의 출력물 또는 이를 기초로 작성된 수사보고서, 피의자신문조서, 수사기관이 작성한 분석보고서 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작성한 감정서 등의 증거를 모두 배제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로 피고인은 이 사건 압수수색과 관련된 절차적 권리를 박탈당했다”며 “수사기관이 이 사건 영장의 범죄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를 선별해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게 됨으로써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장기간 노출될 위험을 계속하게 부담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건 압수수색에서 나타는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는 압수수색 전체를 위법하게 할 정도로 중대하고, 적법절차와 영장주의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위법한 이 사건 압수수색 절차에 의해 수집한 증거들은 모두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의 영역에서 배제해야 하고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결국 2심은 “피고인이 사용하는 노트북의 주소가 이 사건 범행 무렵에 이 사건 IP주소가 할당된 기기의 주소와 동일하다는 등의 사정이 추가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이 이 사건 협박글을 작성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법칙에 관한 법리오해가 없음을 확인한 사례”라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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