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사위 “5건 연속화재 원인, 배터리로 추정”···LG화학·삼성SDI 반발
CATL·테슬라 탐내는 ESS시장···업계 “받아들일 수 없어, 소명 계속할 것”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부가 에너지저장장치(ESS) 연속화재 원인으로 배터리를 지목한 가운데, LG화학·삼성SDI 등 주요 제조사들이 “배터리가 화재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라며 반박하고 나서면서 쟁점과 관련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주요 경쟁국들의 ESS 사업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도 불가피하단 지적도 제기된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8월 이후 발생한 5건의 ESS화재 원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0월 조직된 조사위원회가 맡았다. 조사위는 김재철 숭실대학교 교수, 문이연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사 등이 공동단장을 맡은 가운데 학계와 연구기관, 국회·소방청 등 20명의 위원들로 구성됐다.

충남 예산을 비롯해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하동 △경남 김해 등에서 발생한 ESS화재 등이 조사 대상이었다. 사고 사업장의 운영기록을 분석하고 현장조사, 배터리 해체·분석, 유사 ESS현장 검측, 입체 단층 촬영 등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초동조사부터 정밀분석에 이르기까지 총 60여 차례 다양한 분석을 통해 배터리 결함 가능성을 최종 화재 원인으로 내놓았다.

조사위 측은 “95% 이상의 높은 충전방식과 배터리 이상 현상이 결합돼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현행 ESS사업장들에 대해 충전률을 낮출 것을 권고하고, 배터리 유지 관리를 강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추가적인 화재발생에 대한 명확한 원인규명을 위해 신규 사업장뿐 아니라 기존 ESS 사업장에도 시스템·배터리 운영기록 저장장치 설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주요 제조사들은 반발했다. LG화학은 “배터리가 화재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업체 측은 “지난 4개월 간 실제 사이트를 운영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자체 실증실험을 실시한 결과, 화재가 재현되지 않았다”면서 “조사단에서 추정한 화재원인은 일반적인 현상이거나 실험을 통해 화재의 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도 조사단이 발표한 배터리가 화재현장이 아닌 유사한 시기 설치된 배터리였으며, 화재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던 큰 전압편차는 화재발생 조건이 아니라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업체 측은 “발화지점은 배터리지만, 화재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면서 “화재는 불을 붙일 수 있는 점화원(열)과 불을 지속시키는 산소, 불을 확신시키는 가연물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데 배터리는 ESS 사이트 내 유일한 가연물일 뿐이지 점화원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피력했다.

화재 인과관계를 놓고, 정부와 기업들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진실공방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연속화재 규명이 늦어지면서, 사실 상 전면 중단됐던 ESS 사업재개도 다소 늦춰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지원 아래 국내 기업들이 ESS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놓은 상황에서, 정작 과실은 다른 경쟁국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농후해져 관련 산업분야에서의 경쟁력 상실도 쟁점으로 떠오른다.

한 업계 관계자는 “1차 연속화재 조사 당시 배터리 결함이 없다고 단언한 정부가 5건의 화재 원인을 조사하면서 반년 가까운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기존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며 “이마저도 추정일 분인데,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막대한 입은 기업에 더욱 큰 암울한 미래를 제시했다”고 힐난했다.

우려의 배경은 그간 국내기업 중심이던 ESS업계에 새로운 기업들이 속속 진출을 타진 중인 것이란 점이 부각된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진출을 선언했으며, 중국의 CATL과 비야디(BYD) 등 주요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미국의 테슬라도 전기차 배터리를 넘어 ESS 시장으로 확장을 타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국내 업체들은 한국에서의 설치능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었다. 당국이 2차 화재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국내 제조사들의 배터리 결함 가능성을 지적함에 따라, 대외 신임도에도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됐다. 자연히 해외공략에도 상당한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에 초점을 맞춘 화재원인 결과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든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발생하지 않는 ESS화재가 왜 국내에 집중됐는지 전혀 소명되지 못한 결과”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차라리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원인규명이 이뤄졌더라면,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이를 보완했을 것”이라면서 “현재로선 당국의 조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향후 수주활동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규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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