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중계기관으로 적합”
보험업계 “고객 만족도 향상 및 보험금 청구 과정 투명화 기대”
보건복지부, 긍정적 입장 선회에도 의료계는 ‘나홀로 반대’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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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에서 10여 년간 요구해온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의료계의 반대로 논의가 지지부진했으나 최근 금융당국이 반대 의견을 고려한 대안을 내놓으면서 청구 간소화에 한발 다가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31을 국회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보험금 청구 자료를 의료기관에서 보험사로 전달하는 과정에 중계기관을 도입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을 마련했다. 중계기관을 도입해 의료기관과 보험사를 연계하되, 보험금 청구를 위한 자료를 목적 외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료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법안에 못 박아두겠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으로 ‘의료기관→중계기관→보험사’로 전송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추진 중이다. 중계기관이 보험금 청구 자료를 의료기관과 보험사에 ‘중계’만 하도록 법으로 명시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업계의 숙원사업임과 동시에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현재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선 진료를 받은 후 전화, 인터넷 등으로 보험사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를 통지받아야 한다. 이후 각종 서류를 의료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후 이를 다시 팩스·우편·이메일·스마트폰 등을 통해 보험사에 제출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복잡한 청구 과정을 간소화해 보험금을 보다 편리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요구돼 왔다. 보험사 역시 이에 긍정적이다. 청구 간소화로 지급 과정의 민원이 줄고 과잉진료를 막아 손해율을 외려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청구를 미뤄온 보험금은 대부분 소액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구 과정이 간소화된다고 해서 손해율이 악화될 염려는 적다. 오히려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이점이 있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보험금 청구 과정이 투명해지기 때문에 과잉진료 문제가 해결돼 보험사 손해율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모두 환영하는 법안임에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이 그간 어려웠던 이유는 의료계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다. 의료업계는 청구 간소화를 위한 정보 제공이 환자 정보 유출 우려가 있으며, 간소화 시스템으로 환자의 정보가 보험사에 넘어가면 이것이 지급 거부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해왔다.

금융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중계기관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심평원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적용 급여 항목의 진료를 적정하게 했는지 심사하고 필요한 경우 진료비를 삭감해 과잉의료를 막는 공공기관이다. 이미 모든 의료기관과 보험사와 연계돼 있고, 공공기관인만큼 해킹에 대비한 보안 시스템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어 중계기관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 금융위 판단이다.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도입해 의료계에서 제기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비급여 진료 현황이 심평원에 노출됨으로써 지금까지 병원별로 천차만별로 책정되던 비급여 진료 가격에 일종의 시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의료계 입장에선 가격 통제 요인인 셈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역시 심평원이 중계기관 역할을 하는 것에 찬성하면서 의료계 나홀로 반대 입장이 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의 불안감을 고려해 심평원이 중계 역할만 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자체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던 기존 입장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장은 지난 25일 보험연구원·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인슈어테크와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 정책토론회에서 “심평원 전산망은 이미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에 청구 간소화 과정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며 “청구간소화는 중계기관이 필요하고 그 기관이 아주 제한적으로 심평원이 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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