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불법행위로 손해 발생했지만, 현재도 소유권 침해됐다고 볼 수 없어”
손해배상 채권 시효 10년도 지나···원고 측 “악취 등 피해 여전한데” 반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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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지자체가 불법 매립한 생활 쓰레기가 집 마당에서 발견됐다면 토지소유자는 지자체를 상대로 쓰레기를 제거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그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기 김포시는 1984년 4월부터 1988년 4월까지 김포시 양촌읍 일대 1만6296㎡를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했다. 김포시는 쓰레기 매립과정에서 매립지가 아닌 인접 토지에도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매립했다.

A씨는 2010년 7월 매립지와 인접한 토지 일부 소유권을 취득해 주택부지로 사용했다. 그런데 해당 토지를 굴착해 본 결과 1.5m~4m 깊이에서 비닐, 천, 건축폐기물 등을 포함한 약 0.9t가량의 쓰레기가 발견됐다. A씨는 불법으로 매립된 매립물을 제거하고, 원상회복이 불가능할 경우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로 발생한 비용을 달라며 김포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방해배제청구권에서 ‘방해’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침해를 의미한다. 침해가 과거에 일어나 이미 종결된 ‘손해’와 다른 개념이다. 우리 대법원은 법익 침해가 이미 종료된 경우라면 그로 인한 손해 배상만을 구할 수 있을 뿐 방해 결과의 제거를 구할 수는 없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 5월 1심은 A씨가 불법 매립으로 손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현재 소유권에 대해 별도의 침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지자체는 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나 더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10년 뒤 소멸한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016년 1월 2심은 지자체의 쓰레기매립 행위가 종료됐다고 하더라도 매립한 쓰레기가 A씨의 토지 지하에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지자체는 이 사건 토지에 대한 A씨의 소유권을 현재도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의 쓰레기매립 행위는 ‘방해’ 상태를 야기한 행위”라며 “매립행위의 반대 행위인 ‘수거행위’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심은 김포시가 A씨 토지 지하에 있는 쓰레기를 모두 제거하고, 토지를 원상 복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3년 6개월 만에 또 뒤집혔다. 대법원은 A씨의 손해가 인정되기는 하지만 방해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1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A씨가 김포시를 상대로 제기한 매립물제거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은 “생활 쓰레기가 매립된 지 30년 이상이 지났고, 그 사이 생활 쓰레기가 주변 토양과 뒤섞여 토양을 오염시키고 토양과 사실상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 상태는 과거 쓰레기매립행위로 생긴 결과로 A씨가 입은 손해에 불과할 뿐 현재도 A씨의 소유권에 대해 별도의 침해를 지속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의 방해배제청구는 인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원고의 방해배제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A씨를 대리한 강신업 변호사는 “A씨의 토지에서는 악취가 여전하고 토양이 오염되는 등 그 피해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데도, 방해배제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은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같은 지역 피해자들이 제기한 유사 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 같은 결과가 나와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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