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채용 문화 확산’ 명분···오는 17일부터 개정 ‘채용공정화법률 시행안’ 본격 시행
기업들 “피해 가능성 없는 정보까지 차단···채용상 어려움 뒤따를 것”
고용부 “직무 중심 공정한 채용문화 조성···세부사항 매뉴얼화해 구체화할 것”

고용노동부가 오는 17일부터 블라인드 채용법을 기업 채용에 도입한다. / 사진=셔터스톡
고용노동부가 오는 17일부터 블라인드 채용법을 기업 채용에 도입한다. / 사진=셔터스톡

정부가 오는 17일부터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법’을 본격 시행하면서 기업 채용 전반에 도입해 채용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법을 통해 청년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능력에 따라 고용되는 문화가 확산되는 데 기대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구직자에게 요구하는 정보가 일부분 금지되면서 기업의 채용 자유가 제한될 수 있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부정 채용 청탁·강요와 구직자에 대한 기업의 특정 정보 요구를 법으로 금지하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오는 17일부터 시행한다. 구인자가 구직자에게 직무 수행과 관련 없는 용모·키·체중, 출신지역·혼인 여부·재산, 구직자 본인 직계·형제자매 학력·직업 등에 대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위반 횟수에 따라 과태료 300만~500만원을 부과키로 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기업 인사담당자 397명을 대상으로 ‘입사지원서에 개인 신상 항목을 기재하게 하는지’에 대해 조사한 결과 85.4%가 그렇다고 답했다. 개인 신상은 연령(79.6%), 출신학교(65.8%), 사진(64.9%), 성별(64.3%) 등 순이었다. 해당 항목을 요구하는 이유는 ‘지원자 본인 확인을 위해서’(54.6%)가 가장 많았다. ‘업무에 필요한 요건이라서’(32.4%), ‘지원자의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서’(29.5%), ‘인사 정책상 필요한 항목이라서’(21.5%), ‘조직 적응과 관련된 조건이라서’(16.2%) 등도 꼽혔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불필요한 개인 신상정보 요구는 채용절차공정법 위반일뿐 아니라 적합한 인재 채용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며 “역량과 관계없는 정보의 후광효과로 선입견을 만들기 보다는 직무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 위주로 구성해 채용 단계의 차별 요소를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오는 17일 일괄 적용하는 블라인드채용법안. / 자료=고용노동부, 표=이다인 디자이너
고용노동부가 오는 17일 일괄 적용하는 블라인드채용법안. / 자료=고용노동부, 표=이다인 디자이너

◇구직자들에게 환영받는 ‘블라인드 채용법’

구직자들은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법 취지에 환영하고 있다.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절대 취업을 하지 못한다는 ‘삼일절’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만큼 2030세대에게 취업은 마냥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는데, 블라인드 채용법이 공정한 채용으로 이어줄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채용 때 이력서만 30개 썼다는 이아무개씨(27)는 “광고대행사, 공공기관 등의 인턴생활은 기본, 해외 어학연수 경험도 있어 소위 ‘스펙’에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10군데 이상 서류에서 탈락할 땐 좌절감이 들었다”며 “떨어져도 이유를 모르니 괜히 나이, 학교 등 서류에 기재한 기본정보 탓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최아무개씨(25)는 “이력서 100장을 써서 1군데 붙는 게 요즘 취업 현실인데 이력서(서류)에 종교, 나이, 성별 등을 왜 적어야하는지 모르겠고 그게 직무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괜히 떨어지면 나이 때문인 것 같아 나이나 성별이 큰 단점인 것으로 생각들 때가 많다”며 “그럴 때 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기업들도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법 취지에는 공감하는 입장이다. 다만 구직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미미한 정보 기재 여부까지 정부가 법적으로 일일이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채용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기업의 인재상이나 직무, 채용 목적에 따라 필요한 구직자의 정보가 다른데, 정부가 특정 정보 요구를 법으로 금지시키면서 기업의 채용 자유에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지방에 사업장이 있는 기업들은 법이 시행될 경우, 지역인재 채용, 추천 인재 채용 부문에서 구직자 정보의 누락으로 선발 과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블라인드 채용법상 현 주소지는 기재 가능하지만, 출신 지역 또는 본가 주소는 기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 적용 D-2, 기업들 고민 커져

서울 한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선 해당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에 거주 중인 분들을 지역 인재로 채용해 큰 성과를 내고 있다”며 “채용 절차법상 거주지 주소를 블라인드 처리하면 지방 발령, 파견 등의 의사를 파악하는 데 더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는 “다른 기업에서 직무 수행상 필요없는 정보가 우리 기업에선 필요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없애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기업 입장에서 구직자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면 결국 면접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어 서류 절차가 무의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법상 연령을 기재 할 수 있는 것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법이 시행돼도 나이로 사람을 구별 짓는 문화가 워낙 깊어 법이 정착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블라인드 제도와 고용자에게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 사이를 조화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블라인드 채용법은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 수집, 요구를 금지시켜 불합리한 요소가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회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김진웅 고용부 공정채용기반과 사무관은 “블라인드 채용법에선 사회적 논의를 통해 직무적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최소한의 개인정보들에 대해 수집, 요구를 금지하고 있으며 수집, 요구가 금지되는 개인정보의 범위 등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은 매뉴얼을 통해 구체화할 계획”이라며 “일부 기업에서 지역인재 채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블라인드 채용법에 따라 지역인재 채용이 어렵게 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관은 이어 “국회에서 발의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마련된 법인만큼, 차질 없이 시행해 기업이 원하는 우수한 인재가 채용되는 직무 중심의 공정한 채용문화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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