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벌금형 구형했지만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
“죄 뉘우쳤는지 의심···벌금형, 죄질에 상응하는 형벌 아냐”

한진家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사진=연합뉴스
한진家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사진=연합뉴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심에서 검찰의 구형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두 사람이 죄를 뉘우쳤는지 의심되고, 범행을 감추려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고형을 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는 2일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이사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안 판사는 두 사람에게 각각 160시간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대한항공 법인에는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안 판사가 두 사람에게 선고한 징역형은 검찰이 재판장에게 요구한 벌금형보다 무거운 선고형이다. 검찰의 구형은 법원이 선고형을 정할 때 아무런 구속력이 없으나, 법원이 구형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안 판사는 이 전 이사장에 대해 “한진그룹 총수의 배우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대한항공이) 가족기업인 것처럼 구체적 지침을 하달하고, 그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범행에 가담하게 했다”면서 “(피고인은)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죄를 뉘우쳤는지 의심할 만한 진술을 계속하고 있다. 검찰이 구형한 벌금 3000만원은 이에 상응하는 형벌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징역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해서는 “대한항공 고위 임원, 총수 자녀라는 지위를 이용해 직원으로 하여금 조직적으로 범행에 가담하게 했다”면서 “언론에 관련 사안이 보도된 직후 대한항공을 이용해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하는 등 범행을 감추는 데도 회사를 이용했다. 벌금형은 죄질에 상응하는 형벌이라 보기 어려워 징역형을 선택한다”라고 말했다.

이 전 이사장은 재판 초반 혐의를 부인하다가 지난 5월 13일 열린 공판에 입장을 번복하고 모든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처음부터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두 사람은 선고 직후 취재진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다.

이들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11명(이 전 이사장 6명·조 전 부사장 5명)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처럼 초청해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는다.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이 전 이사장 등의 지시에 따라 필리핀 현지에서 가사도우미를 선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현지에서 가사도우미를 선발하고 일반연수생 비자(D-4)를 발급받도록 하는 등 위장 입국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두 사람은 국적기를 이용해 해외에서 명품을 밀수입한 혐의로 인천지법에서 별도의 재판을 받아 최근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전 이사장은 또 운전기사를 상대로 한 ‘갑질 폭행’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추가 기소돼 있으며, 조 전 부사장은 상해와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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