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분명한 삶의 리듬을 갖고 사는 빈센트라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서 그에게 붙여준 애칭은 ‘쓸모 인류’. 요가 생활 20년을 넘어선 빈센트는 요가를 하지 않는 날엔 몸이 근질거린다고 했다. 그럴 때면 자려고 누웠다가도 훌쩍 일어나 요가를 한다. 쉬는 날이면 소파에 축 늘어져 나무늘보가 되는 나는, 오래된 운동 습관이 건네는 즐거움을 망각하고 사는 육체가 되었다.

빈센트는 나이들수록 자기 몸에 맞는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햇살 좋은 날엔 사랑방 옥상에 올라 요가를 한다. 오래된 운동 습관 덕에 요즘은 남을 즐겁게 가르칠 수준이 됐다고 말한다/ 사진=이지아

 

당신의 몸에 말을 걸어야 할 때

빈센트 나이 마흔 초반, 몸이 자꾸 축 늘어지고 뻐근했다. 인생 전반전을 마친 몸은 그런 식으로 당신 몸을 관리하라는 SOS 신호를 보냈다.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요가 수업을 들었다. 코치가 가르치는 대로 여러 자세를 따라 했다. 몸이 녹초가 됐고, 집에 돌아와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달리 몸이 좀 개운했다. 그렇게 시작된 요가가 20여 년 동안 빈센트의 몸과 동행했다. 그러면서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찾는 일, 꾸준히 한다는 것의 지겨움과 즐거움, 몸을 근질거리게 만드는 건강 신호를 배웠다. 나 같은 나무늘보 타입은 궁금했다. 몸이 근질거린 다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현대병이란 걸달고 살잖아. 몸이 뻐근하다거나 늘어지는 등의 잔 통은 내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야. 요가의 90%는 막힌 경락을 순환시키는 운동이야. 요가는 젊을 때 할 수 있는 격한(?) 운동과 달리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어. 며칠 요가를 하지 않으면 머리와 몸이 운동할 시간이라고 자꾸 말을 걸지. 이런 게 몸이 근질거린다는 거야. 난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예민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나의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살자는 거지. 당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면 자신의 몸을 아는 가장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의 운동을 오래 한단 말인가. “당장 잘하느냐, 못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운동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야.게으른 몸을 잘 꼬셔서 ‘just do it(당장 해보자)’ 하게 만드는 거지. 사람의 몸은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달라고 계속 말을 걸어.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누구나 오래 운동을 할 수 있어. 나는 그동안 요가를 밥 먹듯이 꾸준히 해왔어. 늦은 밤 샤워하기 전에 발가벗고 하는 요가는 사람을 꽤 행복하게 해. 어느 날은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요가를 해. 사람 마음은 간사하고 게으르니까, 마음이 바뀌기 전에 습관처럼 운동을 하는 거야. 그렇게 해왔으니까, 지금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준은 되지. 아내와 친구들을 모아 요가를 가르치면 어떨까. 물론 내가 훌륭한 요가 스승은 아니겠지만, 가르친다는 뜻은 알지. 선생이 라는 게 제자를 잘 꼬셔서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리딩’ 역할이 중요하잖아. 어느 훌륭한 요가 스승만 큼의 기술은 부족할 수 있겠지만, 운동하자고 꼬시는 역할은 잘할 수 있을 거야.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배운 요가를 소개하고, 그다음엔 스스로 밥 먹듯이 꾸준히 하도록 유혹하는 거지. “

1 빈센트는 나이들수록 자기 몸에 맞는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햇살 좋은 날엔 사랑방 옥상에 올라 요가를 한다. 오래된 운동 습관 덕에 요즘은 남을 즐겁게 가르칠 수준이 됐다고 말한다. 2 빈센트의 요가 도구들. 3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독학’이 필수다. 요가 관련된 책을 꾸준히 챙겨 읽었다. /사진=이지아
1 빈센트는 나이들수록 자기 몸에 맞는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햇살 좋은 날엔 사랑방 옥상에 올라 요가를 한다. 오래된 운동 습관 덕에 요즘은 남을 즐겁게 가르칠 수준이 됐다고 말한다. 2 빈센트의 요가 도구들. 3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독학’이 필수다. 요가 관련된 책을 꾸준히 챙겨 읽었다. /사진=이지아

 

오래된 운동의 ‘지조’를 생각한다

나도 잠깐 요가를 배워본 적이 있다. 30대 초반의 일이다. 몸이 늘 개운치 않아서, 스트레칭이 굳은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 정작 요가 수업을 들은 건 서너 번 정도였다. 수강생 대부분이 여자인 데다 고양이 자세 등 요상한 포즈가 어색해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는 나무늘보에게 자극을 주려는 듯, 빈센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생기면, 인도 고아에 가서 2~3개월 정도 아시탕가 요가를 배우고 싶어.” ‘아시탕가’라는 낯선 요가 용어가 궁금해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본다. 먼저 요가에는 정통 요가와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현대 요가 방식들이 있다. 아시탕가(Ashtanga)는 현대 요가의 하나인데, 육체적으로 많은 힘을 요구하는 격렬한 요가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시 탕가 요가의 고향은 인도 마이소르로 알려졌다. 마이소르에는 유명한 요가 스승들이 머물고 있다. 여기서 요가를 배운 교사들이 요가로 더 건강하고 힐링되는 장소를 찾아간다. 인도의 항구 도시 고아가 그곳이었다. 그렇게 고아는 유명한 요가 스승에게 배운 수제자들이 현지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요가 수행을 하는 유명한 곳이다. 고아에서 아시탕가 요가를 배우겠다는 것은 석사학위 소지자가 박사학위에 도전하는 일과 비슷해 보인다. “나에게 요가는 삶이야.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해.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려면 ‘마음의 지조’가 필요하지.” 매일 요가를 실행하는 빈센트를 보며 ‘삶의 지조’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뭐든 꾸준히 하는 ‘지 조’가 약했다. 빈센트를 통해 오랫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온 지조의 결과를 바라본 다. “다른 운동이 그렇듯, 요가 역시 1%가 지식이라면 나머지 99%는 꾸준한 연습 (훈련)으로 이뤄지는 거야. 알량한 지식을 갖고 우쭐대는 인간이 많지. 그런데 빨리 배운다는 건 그만큼 삐그덕대기 쉽다는 거야. 뭐든 제대로 하려면 천천히 배워야 해. 빨리 배운 사람들은 조금 안다고 젠체하지만, 반대로 천천히 지조 있게 배운 사람들은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지. 뭔가를 꾸준히 지조 있게 해왔다면 그건 자기 몸에 깊은 지식이 쌓인 것과 같은 거야. 뭐든 빠른 게 미덕인 세상이 됐지만, 삶의 중요한 것들은 그렇지 않아. 목적이 뚜렷한 사람은 천천히 가는 거야.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지.” 인도의 고아나 마이소르에서 아시탕가를 배우는 일은 나를 위한 시간이자, 남을 위한 시간이다. “일단은 나를 위해 훌쩍 떠나는 시간을 갖는 거야. 나이가 들수록 일부러 이런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어. 요즘 말로 자기 관리랄까. 지금 요가의 고향에서 아시탕가를 배운다는 건, 지금까지 내가 해온 훈련을 더 단순하게, 더 멋있게 다듬는 시간이 되겠지. 앞으로는 나를 위해 배운 요가를 남과 연결하는 계기가 될 거야. 고아에서 요가를 한 번 정리 하고 나면 그 배움을 주변과 더 넓게 공유할 수 있겠지. 배운다는 것과 배운 바를 나누는 일은 인간의 훌륭한 본능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남들이 포기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밥 먹듯이 지조 있게 배우려고 노력했지. 일단은 자신을 위해 꾸준히 배워두는 거야. 그리고 하나를 배우면 최대한 제대로 실력을 갖추려고 노력해야지. 그래야 나중에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한편으로 ‘지조 없음’의 비루함을 깨닫는 일이다. 어쩌다 배운 잔기술 같은 것들로는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문득 ‘어른이 배워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우선 밥 먹듯이 꾸준히 배운 지식이어야 한다. 또 배울수록 그 끝을 알 수 없어 겸손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고, 배운 바를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배워 몸에 쌓인 무엇이야말로 ‘연륜’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지식이 아닐까. 분주한 삶을 잠시 멈추고, 느리게 배울 것들의 목록을 생각했다.

 

리빙센스 2019년 6월호

https://www.smlounge.co.kr/living

기획 정미경 기자 강승민(프리랜서) 사진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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