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마블 세계관·캐릭터·스토리 등 IP 알아보고 거액 투자
메릴린치는 마블 캐릭터 담보로 5억2500만달러 빌려주기도
4차산업에서 IP 중요성 더욱 커져 증권사들의 관심 필요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흥행이 심상찮다. 개봉 첫 날 단 하루 만에 134만873명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대 오프닝 기록을 달성했다. 국내 예매 매출액만 벌써 200억원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나온다. 파급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통가에서는 어벤져스 캐릭터 상품으로 유통 특수를 노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게임업계에선 이미 마블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을 출시한 상황이다.

하나의 콘텐츠와 이를 실질화하는 IP(지식재산권)의 힘은 이처럼 강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이를 일찍이 알아봤다. 디즈니는 2009년 마블엔터테인먼트를 42억4000만달러(약 4조6000억원)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했는데, 이후 마블은 영화 흥행 수익으로만 174억달러(약 20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거둬들이는 IP 사용 로열티를 더하면 수익 규모는 더욱 커진다. 단순한 만화 제작사였지만, 디즈니는 콘텐츠 너머의 IP 가치를 알아보고 과감히 투자한 것이었다. 그 결과 마블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마블과 관련해 IP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일화는 또 있다. 2005년 영화 제작비가 부족했던 마블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메릴린치에 코믹북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와 닉 퓨리를 담보로 잡고 5억2500만달러(5800억원)를 빌렸다. 이는 마블이 2007년에 기록한 매출 4억8600만달러(약 5400억원)보다 많은 수준이다. 여기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메릴린치가 캐릭터 IP의 가치를 인정하고 거액의 자금을 융통해준 부분이다. 그만큼 당시 미국 증권 시장에서 IP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이제서야 IP를 활용한 투자가 태동하고 있다. 한 소형 증권사는 동영상 관련 표준 특허를 기초자산으로 IP 상품을 만들었고, 기관으로부터 113억원대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증권사 주도로 IP 투자 금융상품이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초의 IP 유동화로 꼽히는 ‘보위 채권’이 1997년에 나왔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보위 채권은 영국의 전설적인 록가수인 데이비드보위가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25개 앨범을 유동화한 상품이다.   

늦은 만큼 속도가 나야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선 중대형 증권사들의 적극성이 필요한데 여전히 이들은 IP 투자와 관련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P 투자의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당장 IP 투자를 집행하기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내부의 우려섞인 시선이 있다”고 토로했다. IP 투자가 생소한 데다 투자 성과에 대한 확신이 서지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목소리다.

국내 금융투자산업을 선도하는 이들이 IP와 관련한 투자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지식 기반인 4차 산업 시대에 IP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S&P 500 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무형자산 비중은 1975년 17%에서 1995년 68%, 2015년 8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선 무형자산 비중이 높은 혁신기업에 IP를 담보로 자금조달을 주관하거나 직접 투자를 통해 향후 가치 증대에 대한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IP 투자 상품도 가능하다. 예컨대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정기적으로 특허 사용료를 받는 IP를 사들여 배당 상품을 만들 수 있다. 투자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 수익 등을 투자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분배하는 리츠(REITs·부동산투자전문뮤추얼펀드)와 비슷한 성격이다. IP의 범위가 일반 기술에서부터 콘텐츠, 브랜드 등 넓은 만큼 상황에 따라 다양한 투자 상품도 나올 수 있다.

마침 정부가 IP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황이다. 무형자산의 가치를 분석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IP 투자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민간에서도 이에 대응에 적극적으로 IP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 IP 투자는 증권업을 살찌우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 혁신 기업을 성장 시키고 한국 산업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역할로도 이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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