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법 개정안, 국회서 계류 중···“논의 조차 안 되고 있어”
초단기 아르바이트생들 고용보험 가입 사실상 무의미 지적도
전문가들 “고용보험 가입 의무, 일자리 질 양극화 심해질 수 있다”

# 서울 여의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28)는 ‘주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도 고용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씨의 속마음은 복잡하다. 이씨는 “주 14시간씩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데, 혜택도 없이 보험료를 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정부 정책에는 마지못해 따르지만 현실과의 괴리에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고용보험 가입=양질의 일자리’라는 인식에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초단시간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초단시간 근로자는 주 15시간 미만, 통상 주당 1~2일을 일하는 근로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 주 1~2일 근무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일해야 한다’는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실직 전 18개월 동안 ‘피보험 단위 기간’이 180일 이상일 때 실업급여를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피보험 단위 기간’은 근무일, 유급 휴일 등 임금이 지급된 날을 합한 것으로 무급 휴일은 제외된다.

고용노동부가 11일 발표한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 자료. /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고용노동부가 11일 발표한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 자료. /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고용노동부가 11일 발표한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고용보험 전체 피보험자수는 매월 전년 동기 대비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전체 피보험자수는 1만3355명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고, 11월엔 3.5%, 12월엔 3.6% 증가해 올해 1월엔 3.9%로 증가했다.

이처럼 최근 고용보험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는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초단기 근로자도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함에 따라 고용보험 가입률이 급증한 것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보험 혜택을 통해 향후 일자리 질이 점차 높아질 수 있다”는 취지와는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고용보험 가입을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안심귀가 스카우트로 활동 중인 정아무개씨(43)는 “한 달 근무 시간을 59시간으로 맞춰야 해서 월요일엔 한 시간 먼저 귀가한다”며 “활동 시간이 60시간을 넘지 않게 딱 59시간으로 자른다. 60시간이 넘게 되면 임의로 휴일을 정해 무조건 쉬게 해서 실업급여 대상에선 무조건 제외된다”고 말했다.

서울 한 카페 아르바이트생 박아무개씨(25)는 “최저임금이 오른 탓에 주말 아르바이트 근무시간도 1시간 줄어 하루 7시간씩 일하게 됐다”며 “근무시간이 줄면서 임금도 같이 줄었는데 매달 고용 보험료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실업급여 수급요건 완화 관련 법안’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

초단기 근로자에게도 고용보험 가입을 독려하지만 정작 실업급여의 혜택을 못 보는 현실이 빚어질 수 있지만, 정책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완화하는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다. 이는 각각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6년 7월 발의한 개정안과 지난해 4월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다.

두 법안은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근로자가 수급대상이 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 원내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은 ‘피보험 단위기간을 현행 180일에서 120일로 완화’하는 내용이고, 정부 개정안은 ‘피보험 단위 산정을 이직일 이전 24개월로 연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국회는 법안 처리는 물론 개정안 논의 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초단시간 근로자 고용보험 특별 자진신고기간’을 운영해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미래고용분석과 관계자는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정부 시행령을 동시에 실행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고용보험 현황도 파악하기 어렵다. 일단 선제적으로 보험 가입을 시행하고 법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혜택 여부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일자리 질의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최저임금 인상이 주휴수당과 맞물려 초단시간 일자리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면서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고소득층의 일자리 질은 더욱 좋아지고 오히려 혜택을 못 받는 근로자들의 일자리 질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월 고용동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지난해보다 10%나 늘었다. 아무래도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근무시간을 줄이다보니까 단시간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고용 질은 여전히 좋지 않다. 단시간 근로자들 대부분을 아르바이트생인데, 사실상 알바 중 큰 사고가 나는 경우도 없어서 고용보험을 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부가 초단시간 근로자들도 고용보험 가입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고용상황이 개선된 것으로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제도적인 결함이 있다. 이들을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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