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설 없는 청소노동자’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
근로기준법에도 휴게시설 설치 규정 없어
국회 계류 중인 관련 법개정 시급 지적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휴게 시설·운영 가이드라인'을 통해 발표한 휴게 공간 설계 및 옥외디자인 주요 표준안.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따로 쉬는 시간도, 휴게실도 없다보니 우리끼리는 ‘대기실’이라고 부르는데…”

서울 시내 A사립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은 따로 없다. 대학교 개강 때는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에 일하고,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때 화장실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복도에 앉아 쉰다.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은 교내 별도 휴게공간이 없어 화장실 내 청소도구 보관 창고에서 쉬는 시간을 보낸다.

정부는 지난해 8월 휴게공간이 없거나 부족해 쉴 공간이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사업장 휴게 시설·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개선을 유도했지만, 청소·경비노동자의 휴게실 설치·운영 실태에 대한 정부당국의 즉각적인 현장 점검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울 한 사립 대학교 청소 노동자 휴게 시설 공간. / 사진=한다원 기자
서울 한 사립 대학교 청소 노동자 휴게 시설 공간. / 사진=한다원 기자

 

A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공식 출근 시간은 오전 7시다. 그러나 오전 6시에는 도착해야 교수 또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청소를 마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

청소노동자 김아무개씨(46)는 “오전 6시쯤 도착해 유니폼을 입고 화장실부터 강의실 복도 등을 차례대로 청소한다”며 “보통 점심시간 전까지 따로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휴게실도 따로 없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과 교대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게 공간이 없는데 어디서 끼니를 해결하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지금은 방학기간이여서 강의실에서 해결하는데 (대학교 개강인) 3월이 되면 다시 화장실 간이 공간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답했다.

A대학에서 기장 오랜 기간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박아무개씨(54)는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 되면 일은 배로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특히 겨울은 눈길에 젖은 신발을 신고 강의실, 복도, 화장실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되도록 학생들 강의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서 쉬고 있다. 휴게 공간이 없으니까. 우리끼리는 대기실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좁고 냄새나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는 편한 편이다. 이렇게 쉴 공간 조차 없는 노동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 강아무개씨(22)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학교에 휴게 공간 설치 마련을 적극 건의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어 안타깝다”며 “지나가다가 손난로를 건네거나 재활용 같은 것을 도와주는 사소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청소 노동자들이 화장실 청소도구함에 간이 의자를 놓은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청소 노동자들이 화장실 청소도구함에 간이 의자를 놓은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도 열악했다. 화려한 업무 공간과는 달리 휴게 시설은 화장실 청소도구함 속 간이의자 하나뿐이었다.

기자가 백화점 내부에 휴식공간이 없냐고 묻자 백화점 청소 노동자 B씨는 “여기 청소도구함에 작은 의자를 두고 쉰다”며 “고객들이 화장실로 몰리면 마냥 앉아서 쉴 수도 없다.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저 말고도 휴게공간을 원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많지만 함부로 건의할 수도 없다. 그만 나오라고 하면 갈 곳도 없기 때문”이라며 “그냥 여기서(화장실 한켠) 쉬는 게 마음 편하다”고 부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지난해 9월 서울 소재 14개 대학과 3개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휴게시설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일하는 건물 202곳 중 휴게실이 지하에 있는 곳은 58곳, 계단 밑에 있는 곳은 50곳이었다.

특히 대다수의 청소·경비노동자들 업무 특성상 새벽에 출근해 청소한 뒤 쉬다가 다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휴게실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휴게실이 아예 없는 건물은 17곳에 달했다.

그동안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 문제는 꾸준히 지적돼 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8월 휴게 시설 위치와 규모, 시설 등 설치기준을 명시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현장에 배포하고 실태점검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장 내 휴게시설은 1인당 1㎡, 최소 6㎡의 면적을 확보해야 하고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냉난방·환기기설 등을 설치해야 한다. 또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적절한 조명과 소음을 차단하는 장비도 갖춰야 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54조(휴게)와 산업안전보건법 5조(사업주 등의 의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79조(휴게시설)·81조(수면 장소 등의 설치)·567조(휴게시설의 설치) 등 현행법에 노동자 휴게시설에 관한 조항이 있다.

그러나 사업주에게 휴게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설치기준은 없다. 규모에 상관없이 반드시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고열·한랭·다습 작업장 외에는 사업주가 휴게시설을 갖추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 있는 조항도 따로 없다. 이에 따라 관련 법이 국회에서 대기 중이지만 법 통과는 아직 미지수다. 

유봉현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가이드라인 배포 이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꾸준히 근로감독하고 있고, 휴게 시설 등을 점검하고 있다”며 “국회에 지금 휴게시설 관련 법이 계류 중에 있다. 하루 빨리 법 제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휴게시설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라며 “근로자가 휴게시설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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