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없이 이뤄지는 공사에도 말 못하는 협력업체들…처벌은 솜방망이 수준

계약은 상호 교환을 근거로 한다. 쉽게 말하면 약속인데, 법적 구속력을 갖는 약속이다. 청약과 승낙이 교차해 하나의 계약이 성립하고, 체결된 계약은 일정기간 또는 조건 안에서 효력을 갖는다. 독일의 근대 철학자 칸트는 계약을 놓고 어떤 사람이 자기 것을 타인에게 이전시키는 두 인격의 결합된 선택의지의 활동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계약된 내용은 구속력을 갖지만, 계약이 성사되기까지는 의견조율은 자유롭다는 뜻이다.

 

 

계약을 선택의지의 활동이라고 본다면 조선업은 계약이란 게 희미한 동네다. 계약 형식만 띈 가짜 계약서들이 조선소 도크를 가득 메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가짜 계약서들이 선박의 전기 배선을 연결하고, 갑판 도장을 칠한다. 일감을 주는 원청과 수주하는 하청 관계에선 계약의 탈을 쓴 계약서들이 특히 넘쳐난다. 계약이란 모름지기 미래에 대한 약속인데, 여기서 계약서는 과거 작업활동에 대한 기록들이 영수증처럼 찍혀 나온다.

 

원청에서 일감을 수주하는 하청업체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 한다. 그들은 이를 업계 관행이라 한다. 갑질에 못 이겨 회사가 도산을 하고, 대표는 신용불량자 상태가 되고 나서야 입이 열린다. 이원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동영코엘스 대표는 우리는 2014년도 323억 정도의 매출액에 영업익 27억을 내는 표준기업이었다. 하지만 2015년도 그 한 해에만 60억원의 손실을 봤으며, 그 다음에 2016년도에는 200억원 적자를 봤다왜 계약 유지했는지 한심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대에서 회유를 한다. ‘단가 올려줄테니 계속 납품해라는 말을 믿고 계속 납품하는 거다고 말했다.

 

조선업에서 벌어지는 허위 계약 사례들은 모두 비슷하다. 일단 공사를 시키고 나중에 대금을 지급한다. 계약서가 작성되기 전에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작업이 끝난 후 공사 대금은 원청에서 마음대로 정하는 식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우조선해양에 계약서 미교부를 이유로 2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들은 본인들이 받은 피해금액의 손톱만한 크기의 과징금이라고 주장한다.

 

피해업체들의 하소연은 결국 공정위로 향한다. 공정위의 솜방망이 처벌이 하청업체 피해를 방조한다는 지적이다. 한 조선 대기업 하청업체 대표는 대기업 본인들이 대놓고 얘기한다. 차라리 과징금 내겠다고. 과징금 백날 내봤자 협력업체 등골 빼먹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이걸 공정위에서 해결 안 해주면 우린 누구한테 가야하냐고 말한다.

 

계약서 없이 일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아무런 약속도 없이 배 한 척이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계약서가 공사 후에 작성된다는 사실은 약속이 날조된다는 말과 같다. 게다가 거짓 약속에 피해를 입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모두 막힌 상황이다. 공정거래를 지키는 공정위의 처벌은 손바닥 때리는 수준이다. 우리는 어쩌다 약속 없는 나라에 살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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