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받은 의사 신상 공개 등 우려 적지 않아…대형 업체보다 중소 업체가 기록 소극적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제약사와 CSO(영업대행사)가 의사에 제공한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록이 업체별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기록 내용을 리베이트 적발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약사와 CSO는 출입하는 병·의원 의사의 신상 공개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이 적지 않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기록과 보관이 의무화된 ‘경제적 이익 등의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작성이 업체별로 차이가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상 매출 규모가 큰 대형 제약사가 상대적으로 지출보고서 작성률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올 1월 1일부터 시행된 지출보고서는 ▲견본품 제공과 ▲학회 참가비 지원 ▲제품 설명회 시 식·음료 제공 ▲임상시험·시판 후 조사비용 지원 등을 시행한 경우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얼마 상당의 무엇을’ 제공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제적 이익 제공을 증명할 수 있는 영수증이나 계약서 등을 5년간 보관해 보건복지부장관 요청 시 제출하는 것도 의무사항이다. 

 

지출보고서는 제약사는 물론 제약사 제품 영업을 대행하는 CSO나 도매업체도 작성해야 한다. 이처럼 원칙적으로 제약사나 CSO가 약사, 한약사,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종사자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 내역을 구체적으로 모두 기록해야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는 지적이다.  

 

A제약사 영업사원은 “의사들이 제약사 직원과 식사를 안 하려고 하지만 힘들게 식사하는 경우에도 지출보고서에 올리지 않고 내 사비로 지출한다”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귀찮은 것도 중요한 사유”라고 말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규모가 큰 제품 설명회 등 행사는 지출보고서에 올리기도 한다”며 “일단 의사들이 보고서에 본인 신상명세가 기록되는 것을 꺼려한다”고 설명했다. 

 

제약사에 비해 CSO는 지출보고서 작성에 더욱​ 소극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CSO 업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개인 CSO나 업체 영업사원들은 대부분 개인카드를 사용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며 “보고서를 쓰는 등 공식화하면 의사 대상 영업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거래처 의사들 신상명세가 남을 수 있는데 어느 의사가 보고서에 본인이 올라가기를 원하겠느냐”며 “CSO 영업행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보고서 작성을 회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CSO에 자사 제품 영업을 위탁한 모 제약사 임원은 “올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그리고 중소업체보다는 대형업체에서 상대적으로 보고서 작성률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제품설명회는 대부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제약사와 CSO가 지출보고서 작성에 소극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거래처 의사들 신상명세가 여과 없이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우려를 파악한 복지부 관계자가 지난 10월 중순 개최된 ‘제약산업 윤리경영 워크숍’에서 지출보고서를 불법 리베이트 적발도구로 사용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업계는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한 업계 소식통은 “백번 양보해서 복지부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해도 검찰이나 경찰 등 사정기관이 복지부에 요청해 자료를 입수하면 보고서에 기록된 의사들은 바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검찰이 CSO의 리베이트 수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풍문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지출보고서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 받은 의사 신상을 공개하는 '순진한' 행동을 할 사람은 없다는 업계 지적이다. 

 

사정당국은 제약사가 CSO에 제공하는 수수료 중 일부가 리베이트로 활용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통상 제약사들은 CSO에 영업을 위탁하고 대행 수수료로 의약품 처방액의 35%에서 55% 사이를 지급한다. 수수료 평균치는 40%에서 45%로 추산된다. 

 

복수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복지부는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업계와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지만 의약품 처방권이 의사에 있는 현행 구조에서 의사 신상을 보고서에 쉽게 기재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