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석 전 KT 부회장 “땅 밑부터 신경써야”…“‘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TF’ 구성

27일 오전 KT 아현지사 앞이 화재 복구작업으로 분주하다. / 사진=연합뉴스
5G(5세대) 상용화를 앞두고 KT 아현지사 화재가 정보기술(IT) 강국의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이번 사건으로 통신 재난에 대한 위험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더군다나 자율주행 등 통신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5G 서비스를 앞둔 상황에서 이통사와 정부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오는 12일 이동통신 3사는 5G 전파 송출을 시작한다. 이를 앞두고 이통 3사는 이번 주에 관련 기자간담회를 마련했지만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 여파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5G 운운보다 기존 네트워크 관리 재정비가 더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노태석 전 KT 부회장은 사용자들이 통신사의 망을 통해 쓰는 정보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땅 밑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부회장은 “앞으로 5G가 상용화되고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땅 밑에서는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며 “기관망, 간선망, 가정에서 사용하는 실핏줄 같은 망 관리에 더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부회장은 점점 무선화에 집중되면서 유선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아무리 가입자가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무선 단말기라고 할지라도 땅 밑에서 관리되는 유선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관리, 교체 등의 작업이 이뤄져야 더 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KT는 국가 기관망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전 부회장은“이통사들은 비용이 들더라도 생명과 직결되는 5G를 원활히 서비스하기 위해 감시시스템과 함께 전문 인력을 통해 점검을 하고 운영보전 관리지침을 매뉴얼대로 철저하게 이행돼야 한다”며 “화재뿐 아니라 지진, 홍수, 노후화 등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KT뿐만 아니라 관련 부처, 이통 3사 모두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일을 단순한 화재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통신이 두절되는 것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갖고 재난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짚어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과거 KT에서 근무했던 송명빈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현재의 네트워크 운영 관리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며 “이번 일을 단순 화재가 아닌, 전시 혹은 폭동에 의한 테러라고 가정하고 비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통 3사의 모든 유무선 네트워크가 서로 협력하고 호환이 가능하도록 범 국가적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송 교수는 5G가 상용화됐을 때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더 끔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소담스럽게 첫 눈이 내리던 날, 가족을 태우고 자율주행으로 달리고 있었다면 네크워크 문제는 단순히 카드결제의 문제가 아닌,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직결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27일 과기정통부는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TF는 이번 화재로 인해 드러난 통신재난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모두 점검하고, 재발방지 및 신속한 재난대응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한다.

이번 TF는 과기정통부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고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소방청,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CJ헬로 등이 참여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같은 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KT 통신망 장애는 인근 지역주민 등 약 50만 명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망가뜨렸다”며 “이른바 초연결사회의 초공포를 예고하며 IT강국 대한민국의 맨 얼굴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총리는 “우리가 성취한 기술이 얼마나 불균형하게 성장했는가를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기술의 외형은 발전시켰으나 운영의 내면은 갖추지 못한 우리의 실상을 노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27일 오전 11시 기준 KT 무선은 96%, 인터넷‧IPTV 99%, 유선전화는 92% 복구가 완료됐다. 광케이블 유선전화는 99% 복구, 동케이블 유선전화는 10% 복구됐다. KT는 동케이블은 굵고 무거워 맨홀로 빼내는 것이 불가능하며 화재현장인 통신구 진입이 가능해져야 복구가 진행될 수 있어 복구에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장애가 지속되는 카드결제기 이용 고객 대부분은 동케이블 기반 서비스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KT는 동케이블 기반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카드결제기 이용이 가능하도록 무선 LTE 라우터 1500대를 지급했다. 편의점 등은 가맹점 본사와 협의해 무선결제기 300여대를 공급했다.

KT는 27일 현장에 소상공인지원센터를 구축해 직원 330명을 투입하고 소상공인을 직접 방문하며 밀착 지원하고 있다. 지난 26일부터는 집단상가를 중심으로 일반 동케이블 유선전화를 광케이블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배달 업체 등은 주문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착신전환서비스 5000여건 안내하고 신청고객에게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KT는 무선 라우터 교체, 착신전환 서비스 제공, 동케이블의 광케이블 교체 및 직원 방문 등을 원할 경우, 100번으로 전화하면 상담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또 개인 사용자 역시 서비스 장애가 지속되는 경우 100번으로 전화하면 조치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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