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정부 목표 내년으로 미뤄지나…전문가들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시 향후 일정 긍정적”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그래픽=김태길 디자이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종전선언 등을 목표로 실무 준비에 나섰던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일정이 지연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한반도 평화 기반을 구축하려는 우리 정부의 구상에 영향이 미칠 모양새다. 미국이 최근 남북철도 공동조사 관련 제재 예외 인정을 허락했음에도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 등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결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톱다운(Top-down·정상회담에서 시작해 하부 회담으로 내려가는 것) 방식이 재가동될 수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그동안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목표로 삼으며 이를 북미 대화와 연동시켜왔던 정부 기류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감지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 정상회담 전이 좋을지 후가 효과적인지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발표한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연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인해왔던 것과는 비교되는 반응이다. 

아울러 연내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해서도 김 대변인은 “연내가 목표다. 우리 정부만의 또 남북의 결정만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미 3자가 다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 최종 목표를 위해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의 발언은 김 위원장과 종전선언을 모두 북미 대화에 연동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처럼 북미 대화 진전을 희망하는 모습을 일관적으로 보이고 있지만, 북미 핵 협상은 여전히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앞서 지난 8일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되자 11월27~28일(현지시간)쯤 뉴욕 또는 워싱턴에서 만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미 고위급회담 성사에 따라 2차 북미정상회담은 내년 1월초 쯤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측 제의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모든 일정이 순연되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북미 고위급회담과 관련해 “북미 간 현재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상태다. 북미 대화를 앞두고 양국이 이른바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는 관측에 힘이 쏠리지만, 김 위원장 답방은 사실상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 특성상 내부적으로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전처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톱다운 방식이 재가동될 수 있다는 데 힘이 실린다. 특히 오는 3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방문을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안과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는 “한·미 워킹그룹에서 미국이 남북 간 철도 제재 해제를 면제해준 것은 미국이 북한에 우호적인 손짓을 낸 것으로 보여지는데, 북한은 이를 어떻게 받아드릴지 고려 중인 것 같다. 12월 중순부터 북한에 내부적 일정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우리 정부가 북한에 고심할 시간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 평론가는 “12월1일 아르헨티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문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주목하면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등 대화 채널을 통해 입장을 듣고 종합해 북한의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문 대통령이 다시 북미 사이서 중재 역할을 펼치며 교착 상태, 비핵화에 대한 물꼬를 틀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물리적 시간이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남북 이행 사안은 내년으로 미뤄질 것이다. 북미 협상이 재개되고 남북 이행 사안이 서로 연동돼 맞물려 순차적으로 일정이 마무리되는 게 최선이지만 북미 간 물밑 교섭을 하고 있는 기류를 봐서는 북미가 판 자체를 깨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 상 미뤄지겠지만 이행 사안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우리 정부 목표와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 위해선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목표였던 연내 일정 등 약속은 못지키더라도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실험장인 풍계리·동창리 실험장을 국제 검증단과 참관하고, 연내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와 함께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제출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며 “북미 고위급회담만 재개되면 향후 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도 북한에게 대화로 나오라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회담 국면을 깨지 않으려고 하는 만큼 북한도 내부적으로 일정 조율하고 미국에게 대답할 때”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