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정규직화·노조단결권 등 잇따라 이견 노출…민주노총 총파업으로 관계 악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11·21 총파업 대회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노조, 경영계가 탄력근로제 확대·정규직화·노조단결권 등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해 21일 총파업을 실시했다. 가뜩이나 정부와 노동 현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노동계가 실제 행동에 나서면서 노·정 간 갈등이 출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노·사·정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정책에 대해 이견이 커졌다. 노사정은 최저임금 인상폭과 이와 연관된 최저임금 산입법위 확대에서 의견이 갈렸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여기서 갈라져 나온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도 그렇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할 권리 확대 문제도 이견이 있다.

특히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도드라졌다. 정부의 노동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최저임금에서 시작됐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이 10%대 오르자 국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지난 5월 처리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매달 지급하는 정기 상여금과 현금으로 지급하는 복리후생비(숙식비, 교통비 등)를 포함시킨 것이다. 또 사업주가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지 않아도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후 처음이다. 국회와 경영계는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에 대한 보완 조치라는 의견이었다.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무력화됐다고 반발했다.

이를 계기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어긋났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에 불참했다.

무엇보다 노사정 갈등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두고 커졌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열고 주 52시간제 도입 보완을 위해 탄력근로제를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기업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이유였다.

이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반발했다. 양대 노총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늘어나면 장시간 노동이 이어지고 실질 임금이 줄어든다는 의견이다.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도 사라진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동계는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해 만든 일부 자회사에서 저임금과 중간착취가 심각하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들이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근거는 지난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이었다. 가이드라인은 자회사 전환 방식을 열어놨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이 21일 국회 앞과 전국 14개 지역에서 총파업을 실시했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ILO 핵심협약 비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직접고용,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연금 개혁 등을 총파업 이유로 내걸었다. 민주노총은 금속노조 등 약 16만명이 이번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  노동계 “정부, 노동 정책 확정 전에 대국민 설득 과정 없어”

정부와 노동계의 노동정책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야당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나서면서 노동계에 동의를 요구했고, 노동계 반발은 거세졌다. 무엇보다 정부가 노동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노동계와 대국민 설득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에 반해 정부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경사노위 틀 안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이에 대한 보완점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 현안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파업을 선택한 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계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경사노위에선 탄력근로제 확대와 함께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 임금 감소 보전 방안 등 모든 논의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는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내놓은 1호 성과물로 노동자를 죽이는 정책이 아닌 경제를 살릴 특단의 대책이다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주장을 하는 건 현재의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보전진을 위해 경사노위의 협치와 대화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정부와 여야가 확정한 상황에서 경사노위에 참여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지 변수는 정부와 국회 입장이 노동 존중 방향으로 선회할 지 여부다”며 “다만 정부와 여야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협상을 하자고 하고 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양보하라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경사노위에 참여한다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는 사실상 제한돼 있다. 정부와 국회가 기획한대로 따라오라는 상황”이라며 “주 40시간 미만인 나라를 제외하고 노동시간 정상화 과정에서 탄력근로제 조건이 붙은 선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첫 회의는 오는 22일 민주노총이 빠진 채로 열린다. 경사노위는 국민연금 개편 방안,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문제 등을 논의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문제를 논의할 특별위원회 구성 문제도 논의할 전망이다.

노정 갈등 원인으로 정부의 일방적 노동 정책 집행 과정을 문제삼는 의견도 나온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야당과 함께 탄력근로제 확대에 일방적으로 나서면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며 “정부가 집권 2년차에 들어서면서 정책을 확정하기 전 국민과 노동계에 설명하고 설득을 하는 과정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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