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시진핑, 일대일로 프로젝트 한국에 동참 요구…전문가들 “균형 외교 통해 신남방정책 이어가야”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현지시간) 싱가포르 썬텍(SUNTE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0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환영의 말을 듣고 있다. 문 대통령의 왼쪽 뒷편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앉아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세안(ASEAN)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순방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신남방정책을 가속할 계기를 마련해 관심을 모은다. 미·중 양국의 무역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정부는 한국과 아세안의 교역·투자 확대를 통해 공동 번영을 이뤄 신남방정책 확산에 주력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주요 국가의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로 불확실성이 확산되는 상황이라는 점과 한국과 아세안과의 교역·투자 및 인적교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력하는 신남방정책은 사람(People)·​평화(Peace)·상생번영(Prosperity) 공동체 등 이른바 ‘3P’를 핵심으로 하는 개념으로,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 수준을 높여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 중심의 교역에서 벗어나 시장을 다변화해 한반도 경제 영역을 확대하면서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안보 차원에선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아세안과의 북핵 대응 공조와 협력을 이끌 계획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외교 순방을 통해 내년 한국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해 회원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낸 것은 신남방정책 대상 국가와의 소통을 구체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이번 순방에서 신남방정책의 기반을 탄탄히 닦은 데 이어 신북방경제 협력까지 더해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속도를 더하겠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7일 문 대통령에게 중국의 신(新)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한국의 적극 동참을 요청하면서 한국이 다시한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중 간 무역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일대일로를 겨냥해 “우리는 파트너들을 부채의 바다에 빠뜨리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미국은 제한적인 벨트나 일방통행 도로(one-way road)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같은 제국주의식 대외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펜스 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연설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제국과 강압이 설 자리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미국을 피해 육상 실크로드는 서쪽으로, 해상 실크로드는 남쪽으로 확대해 600년 전 명나라가 구축한 남중국-인도양-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장악한다는 구상이다. 중국은 유라시아대륙에서부터 아프리카 해양에 이르기까지 60여 개 국가, 국제기구가 참가하는 고속철도망을 연결해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할 계획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은 외교 영역을 다변화하고 균형 있는 외교를 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연계해 우리의 경제 활용 영역을 넓히는 데도 속도를 내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일각에선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시 주석이 일대일로 공동 건설 추진을 제안한 데는 중국이 한국에게 미·중 양국 중 어느 쪽인지 확인하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미·중 양국이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려는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일대일로 사업도 공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을 참여시키려고 추진할 것”이라며 “일대일로 자체가 중국 자본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요청했다고 해서 (한국에게) 특별히 혜택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지금 북한하고의 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대일로 사업 제안을 하면서 스스로 경제 활로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우리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미·중 무역전쟁 사이서 한국은 수출 활로를 찾아 아세안국가와의 수출을 늘리며 교역량을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는 “미·중이 서로 자기편에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무역, 경제 부분을 중국에게 기대고 있고, 미국에겐 안보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미·중 양국이 북핵 문제와 무역 갈등을 놓고 충돌이 심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 입장에선 어느 한 쪽을 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균형 외교를 펼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 특성상 미·중의 적대적 관계 속에서 한반도 양국의 핵심 지역이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이를 역으로 적절히 활용해 균형을 잡고 국가적 이익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