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작가들의 부모 같은 작가였다. 수많은 작가가 그의 그늘에서 노닐었다.

글 =박사(문화 칼럼니스트) / 사진= 서민규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 다와다 요코는 2001년 주한독일문화원의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가 박완서 작가를 만난다. 토론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완서 작가에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영향을 받은 외국 작가는 누구인가요?” 박완서 작가는 우리가 아는 유럽의 유명한 작가 몇 명의 이름을 말했다.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등.

 

그러자 그 학생은 덧붙여 질문했다. “일본 문학은 전혀 읽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더 놀란 건 박완서 작가였다.

“외국 작가 중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나요? 일본 문학이 외국 문학이라는 발상은 우리 세대에 없어요. 우리는 젊었을 때 일본어 읽기를 강요받고 한국어 읽기는 허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도스토옙스키 같은 유럽 문학도 전부 일본어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다와다 요코의 책 <여행하는 말들>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2011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작가들의 부모 같은 작가였다. 수많은 작가가 그의 그늘에서 노닐었다.

소설가 정이현은 추모의 편지에서 “한국 문단에 박완서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여성 작가에게 얼마나 든든한 희망이었는지 선생님은 아실까요?”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 소설을 쓰고 있는 많은 작가가 박완서 작가의 체온을 기억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의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문학 수업은 식민지 시대에 걸쳐 있다. 우리의 역사가 한 인간의 전 생애에 그러데이션처럼 찍힌다. 박완서의 작품 또한 그 과정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난 그는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해방되기 한 해 전이다.

흥분된 아수라장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해방된 후인 1951년에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해 여름,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은 그에게도 비극을 안겨주었다. 가족들이 죽고,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노모와 어린 조카들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는 “내 처녀 시절,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나는 지긋지긋하게 보냈다. 무서운 게, 무서워하며 사는 게 지긋지긋했다”고 그때를 회고한다.

 

그가 40세의 나이에 뒤늦게 등단한 것은 많은 이에게 용기를 주었다. 문학 지망생들은 그가 등단한 나이를 떠올리며 쉽게 희망을 접지 않았다. 전쟁 후의 빠듯한 살림에 1남 4녀를 키워내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꿈도 키워낸, 그러나 어느 모로 보아도 강한 구석이라고는 드러나지 않는 유순한 미소의 전업주부. 그러나 그가 정말 강했던 건 등단 후 쉬지 않고 작품을 써냈다는 사실이다. 이후 40년간 그가 써낸 작품들은 우리나라 문학사에 귀중한 한 획을 그었다. 그는 1970~1980년대 문학에서 잊혔던 땅, 민중·민족문학과 모더니즘으로 갈라선 당시 문학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중산층의 삶을 그려냈다. 그 속물성까지도 생생하게. 그것은 그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려 했다. “잡담, 수다, 눈물, 웃음, 곡, 염불, 비명, 신음, 딸꾹질, 주정, 도리질”(황도경)로.

 

그의 인생에서 굵은 변곡점을 이룬 것은 세 사람의 죽음이다. 오빠와 남편, 그리고 아들. 오빠의 죽음은 그가 문학을 시작한 이유가 됐고, 남편과 아들의 죽음은 그를 종교에 귀의하게 했다. 수많은 이가 죽어나간 전쟁은 그가 작가가 된 직접적인 이유다. 

 

“6·25가 없었어도 내가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6·25가 안 났으면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는 “힘든 시기를 겪고 남다른 경험을 하면서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언젠가는 이걸 쓰리라 생각했다”고 덧붙인다. 고통은 글이 되면서 보석으로 변했다.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스무 살의 영혼도, 80년 된 고옥도 지금은 없다.

그나마 그의 작품들이 남아 우리의 고통을 뚜렷하게 지켜봐줄 뿐.​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 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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