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공개 판결에 1심과 유사 취지로 항소…“‘1심 패소 시 정보공개’ 정부 방침과 배치” 비판도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작성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의 ‘목록’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정작 정부는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측은 이 문건 목록이 대통령 스스로 특정 기간 비공개를 결정할 수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해당하고, 대통령의 지정행위 적법 여부를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1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같은 취지지만 한 번 더 법리적 공방을 벌여보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은 ‘문건 목록을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2일 항소했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정보공개법을 대통령기록물법에 우선 적용해서 대통령의 지정 행위에 대해 재판부가 적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 기록물법 제 17조에 따라 대통령이 보호기간 지정하는 행위는 입법취지상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통령기록물 지정제도는 안정적인 대통령기록물의 생산·보전을 위해서 2007년도에 제정됐다. 현재까지는 제도 도입 초기 단계여서 제정 취지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대통령 기록물 지정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판결을 구하기 위해 상급 법원에 항소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기록관은 1심에서도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법에 의해 공개가 제한되고, 이 사건 정보 역시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해당 문건 목록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문건의 ‘목록’은 정보공개대상이라고 판결했다.

대통령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이고, 법률상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공개를 제한할 수 있는 6가지 이유에 ‘목록’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 1항은 대통령 스스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열람·사본제작 등을 허용하지 않거나 자료제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기간(최장 15년, 사생활의 경우 최장 30년)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 가능한 문건들은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 ▲대내외 경제정책이나 무역거래 및 재정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민경제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물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 및 관계인의 생명·신체·재산 및 명예에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 ▲대통령과 대통령의 보좌기관 및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과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 사이 또는 대통령의 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 등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록물은 세월호 침몰참사가 발생한 날 청와대 비서실, 경호실, 국가안보실에서 승객 구조 공무수행을 위해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 목록에 불과하다”라며 “관련 법에서 정한 지정기록물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오히려 이 사건 정보가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대통령기록관에게 증명책임이 있다고 봤다. 대통령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에 비공개 이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알권리의 시의적절한 실현이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데 미치는 효과, 입헌적 법치국가의 원리 등을 종합해 보면, 대통령은 아무런 제한 없이 임의로 대통령기록물을 선정해 보호기간 지정행위를 할 수 없다”며 무분별한 비공개 결정이 제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7시간 문건 목록을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진행했다.

송 변호사는 대통령기록관 측이 항소한 것과 관련 “문재인 정부는 ‘정보공개소송 1심에서 정부가 패소할 경우 예외적인 국가안보 상황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공개하라’는 방침을 갖고 있다”면서 “인간의 존엄과 인권에 관련된 정보사건임에도 관행적인 항소가 이뤄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공개 소송이 대법원까지 진행될 경우 4~5년이 걸리기도 한다”면서 “최종판결까지 수년이 소요된다면 정보공개 제도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8조는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해 국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보목록을 작성해 갖추어 두고, 그 목록을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정보공개시스템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앞서 송 변호사는 지난해 5월 대통령기록관에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 경호실, 국가안보실에서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공무 수행을 위해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의 목록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목록에는 문서제목 외에도 생산연도, 업무담당자까지 포함됐다.

하지만 대통령기록관은 해당 목록과 문건이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됐기 때문에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한다며 비공개결정을 내렸다.

이에 송 변호사는 황 전 권한대행이 당시 문건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권한도 없고, 이 문건 목록들이 비공개대상 정보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번 소송을 냈다.

한편, 이 소송 청구 취지는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문건 ‘목록’을 공개해달라는 내용이다. 송 변호사는 문건 이름을 확보한 뒤 법적 논리를 강화해 문건의 ‘원본’까지 공개를 요구할 계획이다. 목록이 확보되면 공개 청구 대상이 명확해져 원본에 대한 공개 요구가 용이해 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목록을 공개하라’는 대법원 최종 판단이 나올 경우, 원본 공개 소송 역시 법리적 근거가 탄탄해 수월해 질 것이라는 게 송 변호사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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