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내정치 개입했다”는 검찰 수사결과와 배치…원세훈 등 관련 사건에 영향 미칠 듯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MBC 장악시도' 관련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속행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의혹을 추적한 ‘데이비슨 프로젝트’를 국정원의 직무 범위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정원이 전직 대통령을 흠집 내고 국내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라는 검찰 수사결과와 배치되는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조의연 부장판사)는 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등손실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전 청장은 재임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해외 정보원에게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비용을 지급한 혐의 등을 받는데, 법원은 국정원의 뒷조사 활동이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재판부는 당시 미국에 ‘김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 자금이 북한으로 송금될 수도 있다’라는 소문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국정원은 이 소문의 진위를 파악했어야 했기 때문에 대북공작금을 투입할 수 있었다고 봤다. 국가정보원법상 국정원의 직무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로 제한된다.

재판부는 “당시 국정원에 수집된 정보를 종합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비자금 존재 여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는 상태였다”면서 “‘DJ 비자금이 북으로 송금 될 수 있다’라는 소문은 대북 관련성이 있고, 국정원 입장에서는 그 실체파악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재판부의 판단이 향후 관련 사건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검찰은 국정원이 직무범위를 벗어나 국내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는 이유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5월 15일 기소),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2월 19일 기소),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2월 19일 기소) 등을 재판에 넘긴 상태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하면서 “(미국에서 도는 소문은) 애초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실체가 없는 풍문 수준에 불과했다”라며 “국정원 직무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정치적 목적 하에 특수활동비가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최 전 차장과 김 전 국장의 사건은 형사합의25부(재판장 김선일 부장판사)에 배당된 상태로, 이날 이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국정원의 직무 연관성을 인정한 형사합의21부와 판단이 다를 수 있다.

‘DJ 뒷조사’와 관련돼 원 전 원장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는 형사합의24부(재판장 김상동 부장판사)다. 법조계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현재 총 7건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가 원 전 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사건도 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이현동 전 국세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강하게 반발하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이 이 공작을 국정원의 정당한 업무로 인식했을 수 있고, 국세청 입장에서 국정원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무죄 이유”라며 “국정원이 불법적 요구를 하면 국가기관이 그대로 따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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