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대란’ 설연휴에는 최장 17시간 근무… “택배기사도 사람”

“고객님 안녕하세요. 5분후 배달 예정입니다. 댁에 계시면 몇 호인지 회신 부탁드리며, 연락 없으시면 경비실에 맡겨놓도록 하겠습니다^^~. 19:16”

설을 며칠 앞둔 때였다. 문자를 받았을 땐 마침 집 앞에 거의 다다른 시간이었다. 집 호수를 적어 회신을 넣고 1층 공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택배기사를 발견했다. 기자는 “혹시 0000호로 온 택배인가요? 제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택배기사는 급히 택배상자에 붙은 송장을 가리며 “고객님 성함 확인하겠습니다”고 했다. 이름을 말하자 그는 안도하며 “고객님 상품 맞습니다”고 해당 층까지 옮겨주겠다고 했다. 굳이 괜찮다며 그로부터 택배상자를 받아(빼앗아)냈고, 이만 돌아가보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안색을 보니 ‘어설픈 위선’이라도 떨고 싶었다.
 

그간 기자에게 택배란 물건이 오는 일이었다. 날짜가 지체되면 될수록 ‘내가 언제 시킨건데 아직도 물건이 안 오는거냐 ’며 속이 탔다. 그도 그럴 것이 택배를 받는다해도 택배기사를 직접 마주할 일이 웬만해선 없는 기자에게 택배란 결국 현관문 앞 혹은 경비실에 있는 종이 박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 그런데 아니었다. 


택배는 사람이 오는 일이었다. 그것도 먼지를 담뿍 뒤집어 쓴, 습한 어느 날엔 물기와 먼지에 축 절은 사람이 오는 일이었다. 알면서도 몰랐던 이 사실을 택배기사를 직접 만나고, 그와 대화해 본 후에야 절절히 깨닳았다. 참 더딘 깨달음이었다.

그 후로 어쩐지 마음이 계속 쓰여 이 곳 저 곳에서 택배기사의 목소리를 모았다. 그들의 실제 노동 강도는 감히 내가 배려랍시고 택배상자를 거들어 내 집으로 옮긴다고 덜어지는 물렁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는 물류 대란 시즌이던 설 명절 직전. 특히 이번 설 명절에는 김영란법 개정으로 허용 선물 범위가 지난해보다 넓어지면서 물동량 역시 25%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문제는 택배회사들이 물동량이 폭증하는 설 명절을 맞아 비상 근무 체제를 가동해 배송인력·차량 등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택배기사들의 체감 노동강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10년 이상 택배일을 하고 있다는 김 아무개씨는 “회사에서 명절때마다 인원을 늘리고, 차량도 늘리고 한다지만 현장은 전혀 달라지는 게 없다. 7시 출근해서 12시 넘어서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될 뿐”이라고 전했다.

김씨가 전해준 설 명절 ‘비상 근무 체제’의 일상은 예상보다 더욱 고됐다. 김씨는 오전 7시 출근한다. 간밤에 각 지역의 터미널로 몰려든 택배 물량의 분류 및 하차 작업을 실시한다. 자신이 맡은 지역의 물건을 챙겨서 차에 싣는 작업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 작업이 모두 끝나는 시간은 오전 11~12시.

하지만 선물 세트 등으로 물량이 대폭 늘어나는 명절의 경우, 오후 2~3시까지 이 작업이 이어진다. 밀린 시간만큼 배송 출발 시각도 늦어진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배송을 하다보면 끼니를 거르는 건 이미 당연지사가 돼버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밤 12시까지 물량 모두를 배달하기 위해 ‘앞뒤 없이’ 일하고 있다

몇 년 전 설에는 물량이 많아 배송이 지체되자 고객으로부터 ‘물 벼락’을 맞은 아픈 기억도 있다. 김씨는 “설에는 특히 고객들이 예민하다. 신선식품도 많고, 고가의 선물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잘 사는 동네일수록 해당 택배기사가 더욱 힘들다. 선물의 양도 많고 가격도 비싸다. 지난번 설에는 배송이 좀 늦었다며 물 벼락을 맞은 적도 있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또 “고급 아파트의 경우에는 밤 10시 이후에 아예 택배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럴 경우 다음날 다시 와야 하는데, 신선식품일 경우 상하기 때문에 이를 기사 개인이 물어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회사에서 지원해준다는 걸 기대해본 적은 없다. 택배기사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라고도 토로했다.

이토록 힘들어 그들은 노조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는 택배기사를 조합원으로 한 택배기사노동조합에 인가증을 발급했다.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사업자로서 조직된 최초의 노조인 셈이다. 다만 정부로부터는 자격을 인정받았지만 회사로부터는 존재 인정을 거부당했다. 이들이 요구한 교섭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연초부터 택배기사 월급여가 한 달 550만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택배 기사가 대단히 합당한 대우를 받는 양 그려졌다. 실상은 여지없다. 500여만원에서 차량유지비, 세금, 예기치 못한 보상액 등을 제하고 나면 실제 급여는 200만원대로 뚝 떨어진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화려하지 정작 실속은 없다는 뜻이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택배기사도 사람인데….” 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택배를 단순히 물건으로만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그들은 17시간 근무라는 ‘무시무종’의 복마전을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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