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민사소송 통해 손실 보전↑·새 주인 찾기…“두마리 토끼 잡는다”

산업은행과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체결 후 독자생존 길을 걷고 있는 현대상선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과 자율협약 이후 진행한 계약서 재검토 등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서 현대그룹 측 배임 혐의가 발견된 데 따른 고소라는 설명을 내놨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현대그룹과 선긋기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산업은행과 “계약서의 부정적인 내용은 제거 또는 해소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상선 전직 임원 등 5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과정에서 현 회장이 회사에 불리한 지시를 내려 손실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장진석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전무)은 “현대상선은 자율협약 단계에서 부당하게 체결된 계약이 없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진행했는데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 매각과 관련된 계약들이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봤다”면서 “전반적인 거래를 살펴본 결과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가격을 높이기 위해 현대상선이 매년 독점적 계약을 해준다는 구조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 “이익 보전·독점 계약 등 부당 계약”…현대상선, 1000억여원 손실 주장

현대상선은 지난 2014년 현대상선과 현대글로벌, 현정은 회장 등이 각각 47.7%, 24.4%, 13.4%로 가진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발행 주식 및 신주인수권 등을 공동매각했다. 현대상선은 매각 과정에서 현 회장 등 피고소인 5명이 후순위 투자와 영업이익 보전 등 현대상선에 불리한 매각 구조를 설계해 1000억여원 투자 손실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상선에 따르면 현 회장 등은 현대로지스틱스의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현대상선이 후순위 투자(1094억원) 및 영업이익 보장(연간 162억원)에 나서도록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현대로지스틱스가 약정된 에비타(EBITDA)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자 현대상선의 후순위 투자금액 전액이 상각됐다. EBITDA는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을 뜻한다.

또 현대상선은 국내외 육상운송, 항만서비스사업 등의 사업부문에서 5년간 독점적으로 현대로지스틱스만을 이용해야 하며, 해외 영업이익이 162억원에 미달하는 경우 현대상선이 그 미달하는 금액을 현대로지스틱스에 지급하도록 계약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체결한 계약은 독소 조항으로 작용, 지금도 현대로지스틱스에 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게 현대상선의 설명이다.

장 실장은 “후순위 투자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실제로 향후 후순위 투자에 대한 회수가 거의 불가능한 거래였다고 판단된다”며 “161억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5년간 보장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정이 없는 경우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불합리한 내용이 분명한데, 이 계약조건은 당연히 거쳐야 할 이사회 결의조차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 현대그룹과 거리 두기 나선 현대상선…산업은행 “적법한 절차 거쳐야” 동의

업계에선 현대상선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고소를 놓고 현대상선이 투자 손실 중단과 현대그룹과 거리 두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앞서 현대상선은 ‘HYUNDAI MERCHANT MARINE’이라는 현대상선 기업 이미지를 HYUNDI가 빠진 ‘HMM’으로 변경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형사(배임죄) 고발의 사건 진행 추이를 보고 추후 손해배상청구소송(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만큼, 투자 손실 중단 이후 손실 회수까지 가능할 것”이라면서 “현 회장 고소는 또 현대그룹과 거리를 둠으로써 향후 새 주인 찾기에 유리한 입지를 얻을 수 있는 장점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지분율 13.13%) 역시 현 회장에 대한 고소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2016년 말 진행한 채권단 실사 자료에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관련 계약은 현대상선에 큰 부담이 되는 부분이며 해소해야 한다”고 밝히고 이번 고소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롯데글로벌로지스(구 현대로지스틱스)가 현대상선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도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영업이익 보장 조건에 따라 롯데에 미달 금액을 지급해야 하지만 실행하지 못했고, 지난해 12월 14일 민사소송을 걸어왔다”며 “계약건에 대해 전반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느껴 답변서 마지막 기간에 맞춰서 고소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그룹은 당시 현대상선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산 매각 등 유동성을 확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사회 결의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을 진행했다는 태도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지적한 매각과정 문제는 이사회 결의 등 적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면서 “피고소인 당사자들이 개별적으로 법률적 검토 및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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