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서 증발하는 수많은 의료데이터…개인 의료기록 통제권 ‘요지부동’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이 의료계에 빠르게 흡수되고 있지만 정작 의료 데이터 관리는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공지능이 제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생로병사와 밀접한 분야인 만큼, 데이터가 의료 질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오죽하면 빅데이터는 미래 연료라고도 불린다. 그런 빅데이터가 정작 우리 의료계에서는 곧잘 휘발되곤 한다.

대형병원을 살펴보자. 이들 병원에는 하루에도 환자 수백명이 줄지어 찾아온다. 진료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사는 다음 환자를 만나기 위해 온종일 정신없이 진료에 매진한다. 이런 탓에 의사들은 환자의 기록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기자에게 “유명 병원 의사들 대다수는 환자 데이터에 거의 아무것도 입력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대충 뭉뚱그린 처방 정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연구를 위한 알찬 데이터를 누가 입력하고 있겠냐는 거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에 대한 큰 관심이나 뜻이 있어서 하는 경우 말고는 대부분의 데이터가 버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 쪽은 질 좋은 데이터가 인공지능의 정확도를 크게 좌우한다. 정밀의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유전자, 생활습관, 환경 등이 모두 데이터로 축적돼야 한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의료기록, 유전자 정보를 스마트폰에 넣어 다니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런 정보로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자신의 과거 병력, 유전자 특성에 맞는 진료와 예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루 빨리 데이터를 모아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고급 의료 정보들을 다 놓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는 개인이 자신의 의료기록을 살펴보기도 어렵다. 인공지능을 논하는 시대지만 우리가 자신의 진료 기록을 보기 위해서는 진료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직접 해당 병원을 방문해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각계에서는 의료데이터 개방성 확대에 대해 요구하고 있다. 데이터를 소유하는 주체를 두고도 설왕설래가 많다.

최근에는 이런 이유로 개인건강기록(PHR, Personal Health Records)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개인건강기록은 여러 의료기관에 흩어져있는 진료나 건강 정보 등을 모두 취합해 개인이 스스로 열람하고 관리할 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나 법규, 표준안 손질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의료의 질 제고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사안이다. 개인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의료 데이터 구축 실태를 대대적으로 파악하고, 그 데이터에 대한 개인의 접근을 고려해 대책을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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