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에 휘둘리는 '우물안 개구리' 국내 금융산업…공정하고 투명한 'CEO 도전 경로' 만들어야

미국 월가에서 지금 가장 출중한 경영자를 꼽으라면 과연 누가 선택될까.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에 표가 몰릴 것이 틀림없다.

다이먼은 지난 2005년부터 JP모건체이스를 이끌면서 뚜렷한 경영성과를 내고 있다. 매출액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면서 올해는 10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수익도 알차 올들어서도 분기마다 '어닝 서프라이즈'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영성과를 내다보니 받는 보수도 월가 최고다. 그는 지난해 2820만달러를 받아 2년 연속 월가 연봉킹에 랭크됐다. 2250만달러로 2위인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를 넉넉한 격차로 따돌렸다. 그는 월가 경영자들이 받는 보수가 너무 많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당신들과 달리 우리는 회사에 큰 돈을 벌어준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다이몬 회장에 새삼 눈길을 주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역할과 역량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극명하게 달라짐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야말로 그의 존재감을 한껏 부각시킨 사건이다. 시티그룹, 메릴린치 등 월가의 내노라하는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위기에 몰려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터에 JP모건 만은 홀로 건재했다. 월가의 대표적 투자은행중 한 곳이던 베어스턴스를 헐값에 인수해 덩치를 키웠으니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다.

JP모건과 대척점에 있는 사례가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샌포드 웨일 회장의 시티그룹이다. 시티그룹은 증권과 보험을 주축으로 웨일 회장이 이끌던 트래블러스그룹과 은행과 카드업 강자인 시티코프가 1998년 합병하면서 탄생한 초대형 종합금융그룹이다. 다이먼은 트래블러스그룹 계열 투자은행인 살로먼스미스바니 대표로 웨일 회장을 도와 합병작업을 주도했다. 당시 40대 초반이던 다이먼은 웨일회장의 후계자로 불렸다.

하지만 합병성사후 웨일의 딸인 제시카의 이사 승진에 반대하는 직언을 했다가 웨일의 눈 밖에 나 회사를 쫓겨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우여 곡절 끝에 월가로 복귀한 '풍운아' 다이먼은 JP모건체이스 수장을 맡아 철저한 위험관리로 글로벌 위기에서도 회사를 굳건히 회사를 지켜​내면서 월가 4위에서 결국 정상으로 끌어 올렸다. 

 

반면 그를 내친 웨일의 시티그룹은 어떻게 됐을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파산위기속에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살아 남는 치욕을 겪었다. 경영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완전히 갈린 것이다.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맥을 못추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9월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금융시장 성숙도가 137개국중 74위에 그쳐 국가경쟁력 순위(26위)에 한참 못 미쳤다. 우리 금융사 경영자들의 역할과 역량에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다이먼의 사례가 보여주듯 경영자는 금융사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경영자를 자리에 앉히려면 그런 잠재력을 가진 인물에게 기회를 주고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선임 방식과 절차를 만드는 일이 꼭 필요하다. 잘못된 방식과 절차로 다이먼 같은 경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일은 결과가 뻔할 수 밖에 없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임원후보 추천절차 등을 규정해 놓고 있지만 어떤 특정 제도만이 정답이요 최선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몇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생각해볼 수있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꿈과 열정을 지닌 인물들이 당당하게 도전에 나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역량이 클 수록 가장 두려운 도전자라는 점에서 현직 경영자가 인사권이라는 자신의 기득권을 앞세워 경쟁자로 나설만한 싹을 미리 싹둑 자르거나 선임절차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면 차단해야 마땅하다.

 

정부가 인선에 개입하거나 관료출신이 직접 경영을 맡겠다고 나서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우리나라 금융이 이 모양 이 꼴이 된데는 관치금융의 폐해가 크다. 정부가 '보이는 손'으로 금융자원 배분과 인사에 함부로 개입할수록 금융산업은 정부의 수준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과거 정권의 후광을 등에 업은 인물들이 금융지주 회장을 나눠 맡고 '4대천왕' 소리를 들으며 금융계에 군림하는 웃지 못할 행태도 있었다. 과문한 탓인지 이들이 대한민국 금융의 글로벌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정부는 선수로서 직접 게임에 나서는 행태에서 벗어나 게임의 룰을 바로 세우고 엄정하고 공정하게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쳐야 한다. '관'에서 '민'으로의 일방통행식 인사가 아니라 금융위원장도 민간이 맡는 양방향 교류가 자연스레 이루어질때 우리 금융은 비로서 관치금융의 사슬에서 온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관료경험이 없는 다이먼도 지난 오바마 정부에 이어 이번 트럼프 정부에서도 강력한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지금 우리 금융계는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에서 이런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인 CEO 인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미 마무리된 곳도 있고 수장이 내년 봄 임기를 앞둔 곳도 있다.

 

다이먼 같은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 최고경영자의 꿈을 키우고 마음 놓고 도전에 나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때 우리 금융산업은 비로서 글로벌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길이 열린다. 4차산업혁명의 격랑속에서 우리 금융산업의 미래를 만드는 일도 한층 탄탄하게 다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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