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판부에 동일한 취지 소송…‘법률적 판단’ 바꿀 변수도 없어

지난 9월 2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파리바게뜨에서 제빵사가 빵에 들어갈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리바게뜨가 제빵사 직접고용을 지시한 고용노동부 처분에 반발해 낸 집행정지 신청이 28일 각하되면서 본안소송도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동일한 취지의 본안소송을 같은 재판부가 심리할 뿐 아니라, ‘시정지시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는 법률적 판단을 뒤집을 변수도 없기 때문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전날 파리바게뜨를 운영 하는 (주)파리크라상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직접고용 시정지시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이나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청구인의 주장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이번 시정지시가 그 자체로 법적 효과 발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파리바게뜨 측의 협력을 통해 사실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목적으로 하는 ‘행정지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또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부과는 이 사건 시정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해서 부과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시정지시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되지 않아 시정지시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집행정지 신청은 부적법하다”면서 “신청인의 나머지 주장을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사건 시정지시 처분성을 인정하더라도 이 사건 시정지시로 신청인이 받는 불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파리바게트 측은 본안소송을 그대로 진행해 고용부 시정지시 처분의 적절성을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사건 재판 일정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은 ‘반전’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본안소송인 ‘직접고용 시정지시 처분취소 청구’도 앞서 각하된 집행정지 신청과 취지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본안소송이 가처분 신청과 동일한 취지라면 논리 필연적으로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고용부의 시정 지시가 강제성을 띤 ‘행정처분’이 아닌 단순한 ‘행정지도’이기 때문에 행정법원이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대호의 나승철 변호사도 “각하는 소송의 적법요건을 판단하는 법률적 판단”이라면서 “새로운 증거물 제출 등으로 추가 심리가 가능한 사실관계 판단과 다르다”고 말했다. 또 “행정처분성이 없어 각하한 가처분 신청과 동일한 취지의 청구에 대해 같은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재경지법 한 판사 역시 “본안소송도 각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법원 판결을 두고 고용부는 다음달 5일까지 파리바게뜨가 시정지시를 이행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고용부는 파리바게뜨가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530억원의 과태료와 함께 파견법 위반 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파리바게뜨 측은 과태료 부과에 대한 이의가 있으면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과태료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접수되면 행정청의 과태료 부과는 우선 효과를 잃는다. 하지만 직접고용의무는 유지돼 파리바게뜨 관계자들이 형사처벌 될 수 있다.

 

고용부 고용차별개선과 관계자는 “파리바게뜨가 제빵사를 직접 고용의무를 이행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절차에 따라 과태료 부과와 형사처벌이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파리바게뜨 본사와 제빵기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 11곳, 직영점·위탁점·가맹점 56곳 등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결과,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 등에 대해 사실상 직접 지휘·명령을 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했다.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고 인력수급을 원활하게 할 목적이 있는 파견법 제6조2(고용의무)는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가 파리바게뜨를 사용사업주로 판단한 근거로는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에 대해 교육·훈련 외에도 채용·평가·임금 승진 등에 관한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시행했다는 점 ▲파리바게뜨 소속 품질관리사(QSV)를 통해 출근시간 관리는 물론,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시·감독을 함으로써 가맹사업법의 허용범위를 벗어나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 역할을 한 점 등이 있다.

고용부는 9월 28일 파리바게뜨에 이러한 불법 파견 사실을 고지하면서 전국 가맹점에 근무하는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하고, 연장·휴일근로수당 등 체불임금 110억1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시정지시를 내렸다.

한편,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 등은 이번 판결과 상관없이 민사법원에 파리바게뜨를 상대로 고용의사표시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