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대기업 기술탈취 피해사례 발표…“형사처벌 적용 어려운 한계도”

# 중소기업 A사는 완성차 업체인 B대기업과 2006년부터 11년간 독자 개발한 기술에 대해 공동특허 등록 후 계약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2013년 11월부터 B대기업이 총 8차례 이메일 등으로 기술 자료를 요구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4년 B대기업 직원 한 명은 A사 기술을 이용해 석사논문 통과와 특허를 취득했다. B대기업은 이후 A사와의 모든 계약을 해지했다. 


# 중소기업 C사는 조선업체 D대기업과 협력업체다. C사는 D대기업과 계약하기 전에 시공에 들어갔다. 견적 및 하도급 대금은 D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 D대기업은 수정 및 추가 작업에 대해서 공사 대금도 지급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매월 정산대금의 합의 및 전자서명을 강요해왔다는 게 C사의 주장이다.  


대기업의 하도급 갑질·기술탈취 피해를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주장하는 사례들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기업 갑질에도 조용히 눈물만 훔치는 중소기업은 더 많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의 갑질·기술탈취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해줄만한 법적 구조망이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는 것보다 불합리한 갑질 및 횡포를 참아내야 한다고 중소기업들은 호소한다.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대기업 하도급 갑질, 기술탈취 등에 대해 집행력을 강화해야한다고 토로한다. 정부도 이 내용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집행력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고 답한다.

홍익표·제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주관해 지난 26일 오후​ 열린 ‘대기업의 하도급 갑질 기술탈취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 대회’에서는 중소기업 대표, 법률전문가, 정부부처 관계자 등이 기술탈취 피해와 방지 대책 등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토론을 했다.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대기업의 하도급 갑질 기술탈취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대회가 열리고 있다. / 사진=홍익표의원실
중소업체 대표들은 사뭇 긴장한 모습으로 토론회 시작 30분 전부터 세미나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토론회는 참석자들의 열띈 참여로 예정 시간보다 45분정도 지연되며 3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런데 토론회가 진행될수록 중소업체 대표들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정부 측이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거란 예상과는 달리 ‘현행 제도’라는 벽에 다시 부딪힌 것이다.

◇ “법적 구멍이 너무 많아” vs “집행력 강화 능사 아냐”

중소업체들은 정부가 대기업 하도급 갑질, 특히 기술탈취에 대한 감시·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집행력 강화만으로는 대기업의 갑질을 근절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중소업체 대표들은 △공정위의 적극적 조사 및 엄중한 조치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 강화 법률 개정 공정위의 공정한 재조사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 조정안 결정의 특별법 입법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보던 한 중소업체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기술탈취에 대한 대책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제도적으로 법적 구멍이 너무 많아 진행을 못하는 것”이라며 “피해 받은 사람이 모든 증거를 입증하라 한다. 확증이 아니면 영장발급이 힘들다는 말이다. 우리가 수사관도 아닌데 어떻게 타사 사무실에 들어가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겠나. (대응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날 발표대회에서는 대기업 하도급 기술탈취를 근절하기 위해서  정부의 집행권 강화보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부터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부분 정부측 의견이었다.

박성준 특허청 국장은 “기술 탈취 문제 해결책으로 정부의 집행력 강화를 많이 강조하지만 궁극적 해결방안은 아니다. 강화된 집행력으로 누굴 때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는게 문제다. 우리나라 지식보호법 체계가 너무 약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대기업 기술탈취 근본 문제는 정부의 약한 집행권보다 처벌 대상에 대한 모호한 기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대기업 기술탈취 문제가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우리나라 사회의 낮은 인식 때문이라는 원론적 지적이다. 또 중소기업 스스로 기술 보호 노력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배석희 중소벤처기업부 기술협력과장은 “기술보호 측면에서 사회적 인식과 법·제도적 문제가 많다”며 “우리나라는 타인의 기술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떨어진다. 대기업에서도 이렇게 생각해 기술탈취 문제가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과장은 “중소기업들도 자사 기술을 스스로 보호하자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행정적 혹은 법적 구제 부분에서 어려움이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성경제 공정위 제도하도급개선 과장도 ”기술탈취 사례 중 (중소업체들이) 비밀유지성을 충족시키지 못해 기술로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중소업체들이 자사 기술을 지키려는 노력도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측 발언을 들으며 일부 중소업체 대표들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짓기도 했다. 을지로위원회 총무팀장은 “지금 일반적 기술도용이 아니라 거래관계에서 기술 탈취를 말하고 있다. 일반적 잣대로 분석하면 안된다”며 “이 부분은 검찰, 공정위 등에서 철저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기업의 기술탈취가 관례상 일방적 범죄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주장과 형사처벌에 관대하다는 제도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치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개인적으로 대기업이 하도급업체 기술을 탈취한 사건은 많이 못 봤다. 하도급 관계 경우 기술 탈취를 일방적 도둑질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하도급 관계일 때 양사가 어느정도 기술을 같이 개발하고 교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침해 민사소송에서 중소기업이 정면승부로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며 “영업비밀 관련 사건 중 실형 선고는 이제껏 단 한 건 있었다.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나라는 형사처벌에 있어 굉장히 관대하다”며 제도적 한계를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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