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내면이라지만 와인을 고를 때만큼은 예외다.

사진=리빙센스 박나연

병에 찰싹 붙어 있는 와인 라벨의 정갈함은 보는 이의 맘을 설레게 한다. 와인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어떤 눈, 코, 입을 가진 이인지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꼼꼼히 뜯어보고 첫인상을 결정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금세 포기하는 심정으로 와인 병을 내려놓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디터가 그랬다.

 

와인을 마시는 것을 즐기지만 코에 향이, 입에 맛이 닿을 뿐. 그러나 내가 마시는 와인에 대해 맛과 향으로만 즐기는 것은 나와 연애하는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나이가 몇인지, 이름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깨달았다. 상대를 알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야 하는 사람과 달리, 와인 병은 친절하게도 앞뒤로, 심지어 목에까지 자신의 정보를 두르고 있다. 문제는 그의 언어로 이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

생산자, 생산 지역, 브랜드, 생산 연도가 표기된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표준 라벨. / 사진=리빙센스 박나연

다행히도, 우리는 아주 간단한 지식만 있어도 이를 읽어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은 생산자, 생산 지역, 브랜드, 생산 연도, 등급 표시 그리고 포도의 품종. 와인은 생산 지역에 따라 크게 ‘올드-월드’와 ‘뉴-월드’로 분류된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의 ‘구대륙’ 와인과 미국, 칠레, 호주 등으로 대표되는 ‘신대륙’. 두 종류의 와인 라벨을 보는 요령이 다르다. 모두 직관적으로 와인 생산지와 와인 명, 빈티지를 표기하지만, 구세계의 와인들은 지역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보르도 지역이라 할지라도 어느 포도원에서 나왔는지까지 상세하게 명기되어 있다면 장인의 손길이 닿은 유서 깊은 와인일 확률이 높다. 

 

프랑스 와인의 경우 루지(Rouge), 블랑(Blanc). 이탈리아의 경우 로소(Rosso), 비앙코(Bianco)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표기한다. 취향에 따라 와인의 컬러를 선택한 뒤엔 각 국가가 부여한 마크를 확인하자. 프랑스 와인은 ‘AOC’를, 이탈리아 와인은 ‘DOCG’를 획득한 와인이라면 최상급이라는 뜻이니 믿고 마셔볼 만하다. 스페인은 ‘DOCa’, 독일은 ‘Qmp’라는 나름의 표기법이 있다. 신세계 와인의 라벨은 읽기가 더 쉽다. 포도 품종이나 브랜드, 생산 연도에 대한 표시를 비교적 명료하고 깔끔하게 표시하는편. 와인의 단맛을 나타내는 것도 익숙한 드라이(dry), 스위트(sweet) 등으로 깔끔히 나뉜다. 무엇보다 라벨의 디자인과 큰 관계 없이 가성비가 좋은 경우가 많다. 근래들어 와인 라벨은 마케팅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와인에 대한 정보보다 와인이 주는 이미지와 스타일이 중요해졌기 때문. 와인이 가진 히스토리와 모양 등을 귀여운 수다쟁이처럼 자세히 풀어,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입력 받는 것 이상의 정보를 얻게 되기도 한다. 라벨의 상태를 보고 구매해도 되는 와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도 있다. 병에 와인이 묻은 듯 얼룩이 있다면 문제가 있는 와인이다. 사실 라벨을 100%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본래 라벨의 기본적인 의무는 ‘병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대한 팩트를 전달하는 것뿐이니까. 그러나 알아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무언가를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관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떼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에디터는 이 가을, 와인과의 건설적인 청춘 사업을 위해 라벨을 다시 한 번 유심히 들여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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