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영상태·매출에 따라 다른 판결 나올 듯”

현대·기아차 노조 조합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 앞에서 '현대기아차 그룹사 노동자 총집결 투쟁대회'를 진행했다. 2017.8.22 / 사진=뉴스1


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핵심은 노동자의 청구로 발생한 기아차의 재정적 부담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였다. 유사 소송에서도 각 기업의 재정 및 경영상태, 매출 실적이 재판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31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4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상여금과 중식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원고들이 청구한 1조926억원(원금 6588억, 이자 4338억) 중 4233억원(원금 3126억, 지연이자 1097억)을 인용했다.


법원의 결정은 결국 신의칙에 대한 판단에서 갈렸다. 신의칙이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선고 결과로 기아 측이 예상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노사가 임금협상과정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기본급과 각종 수당의 증액 규모, 임금 총액의 규모 등을 정하는 실무가 장기간 이어졌고 정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재정적 부담이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기아차의 재정 및 경영상태, 매출실적이 나쁘지 않다는 근거였다. 기아차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도 없었다. 기아차는 이 기간 1조에서 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기아차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근로자 모두에게 3200억~7800억원의 경영성과급을 지원했기 때문에 이 사건 인용금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기아차가 속한 현대차그룹, 54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자동차업계가 입을 타격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가정적인 결과를 미리 예측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노조원들의 청구가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 아닌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며 “마땅히 받아야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에 대해서도 “원고들의 과거 근로로 생산한 이득은 이미 (기아차가) 향유하고 있다”라며 “노사가 합의해 분할상환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근로자들이 회사의 어려움을 방관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기아차 뿐만 아니라, 비슷한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 재계 전반에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중 192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했다. 이 중 77곳은 노사합의 등으로 소송이 마무리됐고 두산중공업, 현대모비스, 현대미포조선 등 115곳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 결과가 다른 사건들에 기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신의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중요한 것 같다”면서 “각 기업의 재정 및 경영상태, 매출 실적이 재판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이번 재판 결과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중대한 위협이 크게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상급 재판관들은 신의칙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편, 기아차 측은 판결 직후 “법원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항소 의사를 밝혔다. 이어 “현재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기아차의 영업이익이 지난 상반기 7868억원, 2분기 4040억원인 현실을 감안할 때 3분기 기아차의 영업이익 적자전환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