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과 함께라면 열대야도 두렵지 않다 .

 

 
사진=나일론

구관이 명관

옛 공포 영화만이 지닌 특유의 서늘함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한 구도와 어눌한 연출 장치. 이처럼 위태롭고 불안한

분위기에 홀리듯 우리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무려 30여 년 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은 말하자면 매력 덩어리 같은 영화다. 호러물이라면 ‘갑툭튀’ 귀신이나 잔인하기 그지없는 핏빛 장면 하나쯤 필수로 등장하기 마련. 그러나 이토록 흔한 관문조차 없음에도 불구, <샤이닝> 속 광기 가득한 주인공들은 러닝 타임 내내 심장을 부여잡게 만든다. 반면 “<샤이닝>을 능가하는 고전 공포 영화는 없다”라고 입을 모으는 사람들마저 강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대가 하나 있다. 무수한 루머와 함께 여전히 전설로 회자되

사진=나일론

는 영화 <엑소시스트>다. 유연한(?) 포즈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오던 그녀의 모습은 못 본 이는 있어도 안 본 이는 없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실제 촬영 도중 스태프 한 명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며 <엑소시스트>를 ‘저주받은 영화’로 손꼽기도 했다. 영화 속 오랜 배경 탓에 몰입이 방해된다면 ‘21세기형 공포 바이블’로 불리는 <주온> 시리즈에 도전해볼 것. 특히 영화 제작의 근간이 된 비디오판 <주온>이야말로 ‘호러 강국’의 명성을 입증할 신(新)고전임에 틀림없다.​

 

내가 누구게

귀신보다 무서운 건 역시 ‘사람’이다. 최근 화제가 된 작품 속 공포의 대상만 봐도 알 수 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 목이 없는 유령 같은 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늘 곁에 있던 가족, 가까이 사는 이웃 등이 돌변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전해준다. 작년 초여름, 대한민국 전체가 미끼를 물게 한 <곡성>에서는 초반부 맹랑하고 사랑스러운 주인공의 딸이 등장해 연신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싸늘하게 변해버렸고,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야 만다. 작은 체구와 상냥한 말투가 마치 천사 같았던 <오펀: 천사의 비밀> 속 소녀도 마찬가지. 불우한 사정으로 입양돼 어느 부부의 딸이자 어린 여동생의 언니가 된 그녀는 후반부 불현듯 살기 넘치는 표정을 드러냈다. 혹자는 이러한 심리 겨냥 스릴러물을 가리켜 “모든 과정을 함께 지켜봤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평했다. 언제 어떻게든 발현될 수 있는 제3의 내면과 백팔십도로 달라지는 영화 속 인물의 섬뜩한 변화. 지금 당신 옆에 자리한 그 누구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이거 실화냐

결국 궁극적 공포는 한 지점에 있다. 바로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스크린 속 주인공의 비현실적 스토리야 그저 “영화잖아”라며 웃어넘길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나와는 멀게만 느껴지던 일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진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것 같은 익숙함,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높은 실현 가능성에 우리의 불안감은 증폭한다. 한때 커다란 이슈를 몰고 왔던 <블레어 위치>를 보고 난 뒤, 무덤덤한 성격의 지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감상평을 전했다. “소리가 너무 실감 나서 나까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 공포에 사로잡혀 내는 비명과 숨소리의 주인공들을 보면 도저히 연기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컨저링>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인형 ‘애나벨’을 봤을 적에도 그랬다. 언뜻 봐도 사연 많게 생긴 그녀가 실존 대상이며, 마지막 장면에 나타난 실제 인형 사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농담으로 ‘먼 나라 이야기’라고 위안을 삼던 것도 잠시. 곧 애나벨이 내한을 계획 중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은 감독을 향한 원망마저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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