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내년도 R&D 예산 배분안에 반영…톱다운 방식 지양하고 도전적·창조적 연구 지원 강화

/ 디자이너 조현경
우리나라 R&D(연구개발) 예산이 2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R&D 예산 투입의 양적 증가에 비해 그 효과는 부실하다는 지적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중복 예산 투입과 지원 체계의 누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서 정부의 과잉 개입이 R&D 비효율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내놨다. 기초과학 R&D 분야의 홀대론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1990년 한국의 R&D(연구개발) 예산은 1조원에 채 미치지 못하는 9000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1년 5조7000억원으로 증가한 후 2008년 11조1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 R&D 국가 예산은 19조5000억원에 이른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예산 비중도 매년 늘어나 선진국과 비교해도 낮지 않다. 지난 2015년 기준 GDP 대비 R&D 비중은 4.23%였다. 이는 총량적으로만 본다면 일본(3.59%)과 독일(2.9%), 미국(2.74%) 등을 앞서는 수준이다. 환율을 적용한 국내 총 R&D 비용도 세계 6위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

수치상으로 본다면 정부가 R&D 투자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게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GDP 대비 R&D 지출 비율은 세계 1위 수주이지만 상업화 수준은 43위다.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발표는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 R&D 특허의 해외 기술이전은 전체 기술이전 가운데 0.3%에 불과하다. 그만큼 예산 대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 “내년도 R&D 사업, 기초연구에 중점”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과학기술(R&D) 진흥’ 분야에서 자율과 책임성이 강화된 연구개발 생태계로 혁신 등 새 정부의 R&D 관련 5개 세부 공약을 내걸었다. 이들 세부공약 가운데는 ‘기초연구의 자율성 보장’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연구자 주도의 도전적 지원은 확대하되 간섭은 최소화하는 한편, 순수기초분야 연구지원 예산을 2배로 증액하는 방안도 약속했다. 또 연구자 주도 자유 공모 연구 비율을 20%에서 2배 이상 확대하는 방안도 공약화했다.

지난 2015년 기준 국가 R&D 예산은 18조9000억원이었는데 이 중 순수 연구개발비는 6조8000억원 가량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정부 주도 기획연구에 투자하는 예산인 5조7000억원이었고, 나머지 1조1000억원만 연구자가 주도하는 자유공모 연구비였다. 자유공모 연구비 비율이 22%에 머물렀다.

새 정부의 공약은 최근 발표된 ‘2018년 정부 R&D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서도 반영됐다. 새 정부의 국가 R&D 관련 정책이 기초연구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2018년도 정부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14조5920억원을 들여 기초원천·응용개발 등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출연연·국공립연구소 주요 사업비 등으로 총 20개 부처 460개 사업을 지원한다.

우선 기초원천연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 새 정부의 R&D 투자 전략을 집중한다. 기초연구 및 기반 확대를 위해 올해 1조5000억원이던 예산은 내년 1조8000억원으로 15.6% 늘리고 연구자 주도 방식의 기초연구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연구현장에서 수요가 많은 중견 연구자와 소규모 집단연구 지원을 강화한다.

신진연구자가 임용초기부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비와 연구장비 구축비용 등을 지원하는 ‘생애 첫 실험실’ 지원도 확대한다. 해당 예산은 올해 150억원 규모였지만, 내년에는 525억원으로 3.5배 증액한다. 신진연구자의 경우 도전성과 창의성 평가지표의 비중을 기존 60%에서 70%로 키우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일자리 사업과의 연계도 엿보인다. R&D 특성을 감안해 일자리 생태계 조성에 주력하면서도 일자리 창출효과가 높은 인력양성·활용이나 기술창업, 사업화지원 분야 사업에 우선 투자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R&D, ‘패키지 방식’으로 지원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은 올해 1조2122억원에서 내년 1조4230억원으로 25.6%나 증가한다. 4차 산업혁명의 전략적 투자범위를 ▲기초과학 ▲핵심기술 ▲기반기술 ▲융합기술 ▲법·제도 등 5대 영역으로 정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새로운 투자모델로 가칭 ‘패키지 지원 방식’을 도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기존 사업별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연관되는 기술·산업·제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해 통합 지원하는 방식이다. 내년에는 우선 자율주행차와 정밀의료, 미세먼지 3개 분야에 시범 적용한다.

홍남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에 관계되는 핵심기술인 이른바 ICBM(IoT·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 등 단위기술별로 예산을 심의해왔다”면서 “하지만 단위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초과학이라는 영역이 나오기 때문에 패키지로 예산을 편성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R&D 사업 예산의 배분·조정뿐만 아니라 투자시스템 혁신으로 투자효율성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우선 관행적인 장기 계속 사업을 일몰로 전환해 신규기획을 유도하고, 성과부진 사업 등에 대해서는 부처의 자율구조조정 제도를 정착하도록 했다.

선도형 기술개발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R&D 사업 방식을 다양화했는데, 첨단·미개척 분야와 고위험 분야 등 경쟁방식이 효율적인 분야에 경쟁형 R&D를 대폭 확대하고 이종 기술·산업간 연계와 융합을 촉진하도록 융합형 R&D 사업을 신설했다. ‘인공지능-바이오-로봇-의료 융합개발(84억원), 미래선도기술개발사업(54억원) 등이 대표적인 융합형 R&D 사업이다.

이외에도 대형 R&D 사업의 성공가능성과 연구성과의 품질 제고를 위해 200억원 이상 대형연구시설장비 사업에 종합사업관리(PM) 체계를 점검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PM은 프로젝트 전 과정에 대해 통합적인 관점에서 전문적·과학적 기법을 활용해 공정과 비용, 성과관리 등을 수행한다.

홍남표 미래부 본부장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 분야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대폭 늘리려 했다”면서 “기존 정부가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정해주는 것 보다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야에 확대를 해달라는 요구가 있어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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