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그들만의 세상’ 비꼬는 영화‧드라마 인기…‘문화 공론장’ 역할 관심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문화가 검찰에 분노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가 많을 듯합니다. 실없이 꺼낸 표현은 아닙니다. 차근차근 풀어가 보지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뚜렷하게 던지는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냥 메시지만 넘치는 건 아닙니다. ‘정의감’도 뚜렷합니다. 대부분 부당한 권력에 날을 세우지요. 저는 되레 이 현상에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언제부터 한국의 영화, TV프로그램에 이토록 분노가 넘쳤을까요?

저는 특히 검찰을 겨냥한 콘텐츠에 주목합니다. 대표적으로 꼽을 작품이 영화 ‘더킹’과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비밀의 숲’입니다. 두 작품에서 공히 검찰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넘치는 욕망은 배우들의 호연 속에서 오롯이 드러납니다. 검사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단,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에게 말이지요.

영화 더킹의 한강식 검사(정우성 역)와 드라마 비밀의 숲의 이창준 검사(유재명 역)는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극 초반에는 ‘차세대 검사장 후보’입니다. 검사장은 ‘검찰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차관급 대우를 받지요. 이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한 검사와 이 검사는 ‘야망 덩어리’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검사장 자리에 오릅니다. 그 다음 이야기?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참겠습니다. 물론 비밀의 숲은 방영 중이니 결론을 알 수도 없지요.

이들 주변에는 야망의 떡고물을 받아 이들의 길을 이어가려는 조력자들도 있습니다. ‘작은 야망 덩어리’입니다. 그 주변으로 다시 작고 큰 야망 덩어리들이 뭉쳐 모여 있는 조직이 바로 검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되레 이들 작품을 나름대로 비평하면서 현실의 검찰도 문제 삼습니다. 작품을 소비하며 현실권력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이유?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최근 1년 간 전‧현직 검찰 최고위급 간부들의 비행이 언론지면에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검찰은 주‧조연으로 출연하지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차고 넘칩니다. 이런 분노에 탑승한 콘텐츠들이 각광받기 좋은 시대입니다.  
 

영화 더킹에서 한강식 검사로 등장한 정우성. / 사진=NEW

대중문화를 통한 분노가 사소한 현상은 아닙니다. 역사를 228년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역사의 대지진 같은 사건입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혁명의 동력 중 하나로 계몽사상을 꼽습니다. 


미국의 역사가이자 문화사(文化史)의 거장인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의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앙시앵 레짐, 그러니까 구체제 정통성에 균열을 낸 건 포르노그래피와 중상 비방문들이라는 겁니다. 당시에는 모두 불법 문학이었지요. 이들 작품에서 당시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끊임없는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이와 같은 문화콘텐츠들을 소비하면서 권력의 정통성과 권위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문화사의 대가 린 헌트의 생각도 단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가요? 다소 무리한 연결인가요?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가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바꾸는 직접적 계기가 되는 건 아닐 겁니다. 단턴과 헌트도 그런 말을 했던 건 아닙니다. 단지, 대중문화가 가진 역할에 보다 적절한 설명을 부여해줬던 것뿐입니다.

저는 지금의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단턴과 헌트가 제기한 문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종의 ‘문화 공론장’입니다. 그리고 이 공론장에서 주된 ‘내려찍기’의 대상은 검찰입니다. 아마도 한동안 그럴 것 같습니다. 검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마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권력형 검찰’의 모습을 더 오래 지켜보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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