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아! 독박 육아…

도움말 김영훈(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김이경(관악아동발달심리센터 소장)​

사진=베스트베이비 추경미

모델 이다연(5세)

 

‘독박 쓰다’. 고스톱에서 패자 한 명이 혼자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감당해야 한다는 뜻. 여기에 ‘육아’라는 단어가 조합되면 ‘오롯이 혼자서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독박육아는 2012년 즈음 온라인상에 드문드문 등장하기 시작하다 최근 2~3년 새 폭발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간혹 예외가 있긴 하지만 독박육아의 주체는 대부분 엄마들이다. 아침에 잠깐 스치듯 얼굴 보고 출근한 다음 애들 다 잠들고 난 어둑어둑한 밤이 돼서야 귀가하는 남편을 둔 집, 근처에 친정·시댁 식구 등의 지원군이 없어 홀로 꿋꿋하게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육아독립군 맘들을 말한다.

 

Part 1 아! 독박 육아… 

 

대한민국은 지금 ‘독박육아’ 전성기

사람들 입에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숱하게 오르내린다. 포털 육아 섹션에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오르지 않는 날이 드물고, 인스타그램·페이스북·카스에는 독박육아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이 넘친다. 2017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독박육아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최근 몇 년 새 독박육아가 이렇게까지 이슈가 된 것은 아무래도 온라인 파워 때문일 거다. ‘어쩜 이렇게 딱일까’ 싶은 신조어를 생산해내는 네티즌의 재기발랄함, SNS 발달로 인한 활발한 소통과 그에 따른 파급력에 힘입어 독박육아란 용어는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독박육아가 어제오늘 갑자기 생긴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사실 독박육아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 육아사(史)’다. 남녀평등을 외치던 386 똑순이 선배맘들도 홀로 육아를 담당했다. 성차별 없는 평등한 문화를 치열하게 고민한 세대였지만 정작 가정이라는 현장에 민주적인 가사·육아 분담을 적용하진 못했다. 인류 최초로 ‘X세대’라 불린 자기주장 강하고 개성 넘쳤던 신세대 맘들도 ‘나홀로 육아’를 벗어날 수 없었고, 심지어 새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2000년생 밀레니엄 베이비를 낳고 키운 엄마들도 어김없이 독박육아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사회적 관습에 따라 남자는 으레 바깥일에 매진하고, 여자는 직장이 있든 없든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2017년 독박육아의 고단함을 집단 호소라도 할 수 있는 요즘 엄마들의 상황이 전보다 조금은 더 나은지도 모른다. 이전 세대 엄마들은 불평을 제대로 해소할 기회도 없이 그러려니 받아들였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애 데리고 한숨 돌릴 키즈카페, 방방놀이터도 있고 백화점과 마트마다 운영하는 문센이 엄마들의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최근 몇 년 새 독박육아는 그 어느때보다 대한민국 육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까.

 

왜 ‘지금’ 독박육아인가?!

그러고 보니 정말 궁금하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육아 환경은 분명 과거보다 나아졌다. 질병과 가난으로 아이 돌보는 데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올 일도 드물고, ‘우리 때는…’을 말하는 어르신 세대처럼 세탁기, 청소기 없이 맨몸으로 가사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여자가 말이야’라고 목에 힘주는 남편은 삼엽충, 암모나이트 소리 듣는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야근과 회식으로 육아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는 그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대박이 아빠, 로희 아빠처럼 다정한 아빠가 되길 꿈꾼다.

 

그럼에도 이렇게 독박육아가 이슈가 되는 건, 결국 모든 ‘힘듦’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풍요로운 유년을 보냈다. 최초의 치맛바람을 경험한 알파걸로서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여자라고 가정 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런데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에서 성취도 맛본 그녀들이 엄마가 된 순간, 난생 처음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고립감을 경험해야 한다. 남편이 일로 바쁘고, 양가 부모님과 교류할 형편이 안 되는데다, 주변에 친한 친구나 이웃조차 없다면 출산과 함께 ‘고립된 섬’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일상은 엄마를 힘들고 지치게 한다. 우선 최초의 박탈감은 ‘아기 엄마’가 되면서 운신의 폭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외출 기회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어린애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고난이거니와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친한 친구가 싱글이라면 속한 세계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괜찮아, 데리고 와. 귀여운 조카 얼굴 한번 보자”고 말해주더라도 내 아이가 민폐의 아이콘이 되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꾸준히 커리어를 쌓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던 그녀들이었다. 새로 나온 소설책을 찾아 읽고 가로수길, 경리단길의 핫 플레이스를 섭렵했으며 꾸준히 문화생활도 누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한순간에 멀어지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 박탈감이 생각보다 크다. 포기할 것도, 변화도 생길 거라 짐작했지만 머릿속에 그려보던 것과 갑작스레 닥쳐온 현실은 온도차가 너무 크다. 여기에 더불어 낯선 신체 변화와 호르몬 작용, 수면 부족으로 몸과 마음까지 피폐해진다.​

 

독박육아,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였느니…

사진=베스트베이비 추경미

육아는 익숙함에 달렸다. 출발점은 비슷한듯 보여도 결국 능숙하고 익숙한 사람에게 쏠리게 되어 있다. 실은 모든 업무의 법칙이 그러하다. 가령 남편이 요리에 취미가 있고 더 잘한다면 그 집 주방은 남편 차지가 될 확률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요리가 즐겁고 또 아내가 어설픈 솜씨로 주방을 휘젓고 다니는게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켜보는 본인이 답답하거니와 맛없는 결과물(요리)이 자동 옵션으로 따라오니 이래저래 따져봐도 자기가 하는 게 속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

 

육아도 비슷하다. 엄마가 아빠보다 잘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미 열 달 동안 아기를 품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출발선이 앞서 있다. 게다가 출산 후에는 자연스레 남편보다는 아이와 밀착된 환경에 놓인다. 모유수유 권장 시대를 살고 있기에 혼합수유를 한다 할지라도 출산 직후에는 아이를 끼고 젖을 물리며 친밀감을 쌓는다. 

 

엄마가 육아에 능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뿐만 아니다. 직장에 다닐 경우 엄마는 육아휴직까진 힘들어도 최소한 3개월의 출산휴가를 보장받​는다. 반면에 남편에게 주어진 출산휴가는 고작 3일. 이 짧은 기간조차 회사 눈치를 본다. 그렇다 보니 엄마는 점점 육아를 잘하는 쪽으로 트레이닝 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나홀로 육아, 독박육아의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대한민국 엄마들의 독박육아가 시작된다.

 

독박육아는 워킹맘, 전업맘을 가리지 않는다

전업맘은 전업맘이라는 이유로 가사와 육아에 얽매이고,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집과 회사를 오가며 동동거린다. 남편은 퇴근이라도 하면 하루 업무가 엔딩된다지만 전업맘은 출근도 퇴근도 없이 늘상 육아전선을 달려야 하고, 워킹맘은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똑같이 공부했고, 힘들게 취업했고, 비슷하게 월급 받던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는데 왜 육아는 당연한 듯 엄마의 소관이 되어버렸는가. 아픈 아이 건사하는 것부터 어린이집 알아보기 등등 시시콜콜한 대부분의 육아는 왜 엄마의 몫이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화살은 ‘같이 아이를 낳았으나 같이 키우는 느낌’은 들지 않는 남편에게로 향한다. 고스톱 독박이야 오롯이 내 실수로 뒤집어쓴다지만 육아 독박은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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