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노동자 사고사망, 원청의 8배…“최저입찰제 탓에 악순환”

/ 김태길 디자이너
대규모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이 열악한 원인이 원청업체에 종속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대부분으로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받아 노동환경 개선이 어려워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이정미 의원(정의당)과 민주노총 건설-플랜트노조탄압 대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건설노조활동에 대한 형법상 처벌 남용 근절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플랜트는 산업설비나 기계장치 등을 모은 생산시설이나 공장을 말하는데, 플랜트 건설은 이러한 생산시설이나 공장을 건설하고 증·개축, 유지보수하고 자체를 이동하는 일들을 말한다. 플랜트 건설 분야는 그동안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컸고, 이에 따라 전국 사업장에서 노조가 결성돼 활동 중이지만 검·경 등 수사기관이 다양한 혐의로 기소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노조활동 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건설노동조합 형사처벌의 문제점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플랜트 건설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 하에서 생산이 이뤄져 교섭당사자가 모호하다”면서 “이로 인해 노조가 있어도 안정적인 교섭을 보장받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현행 노사관계 법령은 고정된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로 구성된 기업 단위를 염두에 두고 있는만큼 비정규직 근로자로 구성된 노사관계와는 괴리된다”고 말했다.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은 대규모 산업단지인 공단에서 석유화학, 제철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들이 발주한 현장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한다. 하청업체라는 특성상 주로 임시 일용직으로 일하는 고용형태를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 탓에 노동 조건도 열악하다는 비판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날 토론회에서 윤 연구위원이 인용한 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조선과 철강, 자동차, 화학업종 등 51개 원청사와 소속 사내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당시 조사는 원청 노동자 19만3982명과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상주 하청업체 노동자 18만1208명, 비상주 하청업체 노동자 2만6513명 등 하청업체 노동자 20만772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실태조사 결과, 2015년 기준 51개 원청사의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는 0.05명으로 ‘사고사망만인율’이 0.05%였지만, 사내하청인 상주업체 사고사망만인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0.39%로 나타났다. 원청 노동자에 비해 8배 이상 사망자 발생의 빈도가 높다는 의미다. 또 원청, 상주, 비상주업체 노동자를 모두 합한 사고사망만인율을 계산해도 0.2%로 원청 사고사망만인율에 비해 4배나 높은 수준을 보였다.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정미 국회의원(정의당)과 민주노총 건설-플랜트노조탄압 대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사진=이정미 의원실
그런데 재해율에서는 하청업체보다 원청업체에서 더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업체 플랜트 노동자들의 재해율은 0.79%였지만, 상주 업체는 0.2%, 비상주 업체는 0.0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사고 발생이 더 적게 일어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오히려 재해 사망자 수는 더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작업 중 산재를 겪어도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처리는 어렵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4년 실시한 ‘산재위험직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업 중 산재를 경험한 건설 플랜트 노동자들 중 보험처리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는 응답률은 20.3%에 그쳤고, ‘고용주가 공상 처리했다’는 응답은 58.2%를 절반을 넘었다. 의료보험을 처리한 경우도 19%에 달했다. 결국 플랜트 산업 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10명 중 7명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에서 하청업체로 내려가는 다단계 하도급 등 산업 구조적인 문제 이외에도 최저입찰제로 인한 공사 비용의 저하도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 제일 낮은 가격을 써내면 낙찰을 받는 최저입찰제라는 제도적 조건 속에서 전문건설업체들이 ‘낮은 원가 전략’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과도한 공기 단축고, 불안정한 고용형태, 불규칙한 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등을 낳는다는 주장이다. 

 

윤 연구위원은 “발주처인 대기업과 그 대기업의 계열사인 원청 종합건설사, 그리고 하청 전문건설업체로 이어지는 수직 종속적인 구조가 노동조합 조직화 등 고용관계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건설플랜트업계의 노사관계 안정화 방안을 찾으려면 당장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파악과 더불어 건설업 특성에서 빌된 잠재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 역시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