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행복이 국민 행복

미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술을 사왔다. 보랏빛 물에 은색 펄이 반짝거리는 보드카였다. 은하수 같았다. "우리 별을 마시는 거야?" 다소 끈적거렸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병 바닥이 보일 즈음 취기는 한껏 올랐다. 친구는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작 '별이 빛나는 밤에'를 떠올렸다. 

고흐는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면서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고 말했다나. 별을 홀짝이며 생각했다. 내가 다다르고 싶은 별은 무엇일까. 행복이다.

 

뛰어난 사람은 무릇 고통을 즐길 줄 알고 행복을 유보하는 인내심이 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존재’라는 공리주의 핵심 명제는 이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난 평범한 인간이다보니 소소한 행복에 쩔쩔맨다. 늘어지게 자는 잠, 음주가무 따위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이란 비전을 천명했다. 행복 주택, 행복 교육 등 행복을 수식어로 삼은 수 많은 정책을 시행했다. 박대통령이 말한 행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는 촛불 시위는 국민 민심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병신년 겨울,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실체는 줄을 잘 댄 소수로 드러났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행복은 다양하다. 그리스 문화권에는 행복를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 책에 유데모니아(eudaimonia)란 단어가 나온다. 부끄럽지 않은 행복이란 뜻이다. 무릇 행복은 떳떳해야 한다. 사회가 합의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행복은 도덕이다. 공약에 행복까지 더한 대통령이 약속을 못 지킨 대가를 엄정하게 치러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 배려 덕에, 비선실세를 어머니로 둔 덕에 삼성까지 정유라의 행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반면 국민 대다수는 분노하고 불행했다. 하지만 새해 국민은 여전히 행복을 원한다. 새해 인사로 ‘Happy New Year’, ‘행복하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뒤숭숭하지만 다들 저마다의 떨림을 갖고 다시 별을 바라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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