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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비용과 한국 사회의 퇴보
  • 정재웅 칼럼니스트(facebook.com/jaewoong.jung)
  • 승인 2016.10.0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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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웅의 콜라주 소사이어티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꾸준히 있어왔던 노력의 집적이며,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 더글러스 노스(Douglas C. North), "경제사에서 제도와 변화(Structure and Change in Economic History)" 

지난 1993년, 경제사 연구에 계량경제학 방법을 도입한 공로로 로버트 포겔(Robert W. Fogel)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는 저서 ‘경제사에서 제도와 변화’를 통해 인류 역사가 발전한 과정을 거래비용 관점에서 서술했다.

그에 의하면 인류 역사 발전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거래비용을 줄이면서 최소의 사회적 비용으로 최대의 사회적 효용을 창출하기 위한 인간 노력의 과정이다. 즉 인간(과 그 역사)의 발전은 정치, 경제 등 인간 활동의 각 분야에서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예컨대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혁명은 정치에 있어 불필요한 갈등에 수반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미국 남북전쟁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회 전체적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선거를 근간으로 한 대의민주제도의 확립 역시 안정적으로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그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계약을 체결하는데 있어 수반되는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적은 비용을 투입해 더 높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커짐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높은 성과를 거두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그 파급효과를 최소화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음을 뜻한다. 거래비용이 절감돼 그만큼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효율적으로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길게 계약의 체결과 그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을 언급한 것은 최근 한국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놓고 벌어진 서울대학교병원 진상조사위원회와 주치의 간 의견충돌이나 김재수 농림부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둘러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둘러싼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한국 사회는 이 인류 발전 과정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권당으로서 사회적 갈등 해결에 앞장서고 정국의 난맥상을 해결해야 할 책무가 있는 여당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몽니를 부리며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치와 행정은 원래 규정된 부문을 넘어 산업 및 금융에 지나칠 정도로 간섭함으로써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에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대통령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의 증가는 정치나 경제 영역을 넘어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운영되는데 수반되는 거래비용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한국의 경쟁력 혹은 역량 저하를 초래한다.

거래비용은 경제활동에 있어서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지만 그만큼 성가신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무인도에 살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어떠한 형태의 경제활동을 하건 거래비용은 반드시 수반된다. 예컨대 일정 수준의 품질이 보장되고 가격을 흥정할 필요가 낮은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 것은,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가서 상품을 질(quality)을 확인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대표적 거래비용과 그 절감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거래비용 문제는 정치도 마찬가지인데, 시민 개개인이 정치 사안을 확인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시민 생계비용, 시민을 광장에 모으는 비용 등)을 절감하기 위한 하나의 사회적 합의가 대의민주제다.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자 즉, 갈등을 대리해줄 사람을 선출한다. 이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은 물론 선거와 관련된 유무형의 제반 비용이다. 이러한 "갈등의 대리자"를 통해 제한된 장소, 곧 의회에서 시민들의 갈등을 표출하고, 토론하고, 해결함으로써 그 갈등이 광장으로 나왔을 때보다 훨씬 적은 거래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역시 문제의 소지는 있다. 대리인(agent)을 선출하면 반드시 수반되는 "본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그것이다. 현실은 정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대리인의 "숨겨진 정보(hidden information)"에서 야기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나 기회주의적 행동에서 야기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완전히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대의민주제의 거래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한다. 갈등을 해결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제도(institution)" 자체가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의 실패를 바로잡고자 하는, 혹은 그에 대한 시민들이 항의하는 가장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시위 혹은 데모다. 시민들이 시위를 하는 경우에도 이 선택에 따르는 거래비용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평화적 시위로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이 대리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상당히 드문) 경우, 혹은 경찰이 강경진압을 통한 경우가 그것이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이 낮은 거래비용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정치라는 제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신뢰임을 상기해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신뢰를 형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력과 의료인력 혹은 정치 부문이 앞장서서 이러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

일련의 현상에서 알 수 있듯 현재 한국 사회의 퇴보는, 정치 이론뿐만 아니라 경제 이론으로 봐도 명확하다. 더 큰 문제는 해결방법은 명확한데 반해, 현 집권층은 해결 의지가 없다는데 있다. 해결방법이 뻔히 보이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끊임없이 야당과 사회적 약자에게 그 원인을 돌리며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처럼 이미 한국은 심각한 제도의 실패를 겪고 있고 그 결정적인 원인은 선거에서의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문제와 그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이다. 일부 정치인들과 그들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으로 인해 사회적 신뢰가 붕괴된 한국 사회에서 언제까지 시민들이 이 갈등에 수반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이래서는 정권 교체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재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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