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은 서별관회의 청문회 희생양…1조 아끼려다 수십년 해운 역사 날아갈 판”

 

6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부산항발전협의회 사무실에서 박인호 공동대표를 만났다. 그는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정부와 채권단이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원칙대로 이뤄진 결과라면, 그 엄정한 기준이 대우조선에겐 왜 예외였나?”


박인호(70) 부산항발전협의회 공동대표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처지에 놓인 건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채권단, 정부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태도를 보인 탓이라 지적했다. 한진해운의 모든 이해당사자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나머지 애꿎은 노동자, 부산지역경제만 치명타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한진해운이 위기에 처한 이후 박 대표의 주간시간표는 까맣게 칠해졌다. 한진해운 사태가 경영진의 무능에서 촉발된 일개 회사문제로 치부되는 순간, 부산지역경제와 대한민국 기간산업이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매일 같이 토론회와 간담회, 가두시위에 참석하는 이유다.

6일 오후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부산항발전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백발을 곱게 빗어 넘기고 각 잡힌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박 대표는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한진해운을 살리자는 것은 편향된 주장도 지역 이기주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조양호 회장, 한진 살릴 마음 없는 듯”

인터뷰가 진행된 6일, 한진그룹은 그룹 대책회의를 열어 해외 터미널(롱비치 터미널 등) 지분 및 대여금 채권을 담보로 600억원을 지원하고, 조양호 회장이 사재 400억원을 출연하는 등 총 1000억원을 조달해 한진해운 컨테이너 하역 정상화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한진그룹 측은 “한진해운이 이미 법정 관리에 들어 있지만, 그룹 차원에서 수출입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인호 대표는 한진그룹이 내놓은 지원대책은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원액이 법원 파산부가 추정한 최소 긴급 자금 17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탓이다.

“한진그룹이 해운업을 살릴 마음이 있었다면 이 정도 액수를 발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요자금이 얼마인지는 자체적으로 파악이 됐을 것이다. 이 정도 액수로는 회생을 말할 수 없다. 결국 여론 정화와 정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면피용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박 대표는 한진해운과 대한항공 관계를 공동운명체라고 표현했다. 증권가에서는 “지분 33.2%를 가지고 있는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이제 추가지원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며 대한항공이 ‘앓던 이’를 제거한 격이란 분석을 내놨다. 박 대표는 이 같은 표현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지출이 필요 없게 됐다. 대한항공 눈치를 보던 조양호 회장도 아마 이 같은 상황을 염두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크게 손해 볼 거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두 회사는 공동운명체다. 대한항공 탓에 한진해운이 무너진다면 부산 지역 중심으로 대한항공 승선거부운동도 벌일 수 있다.”

◇ “한진해운과 대우조선 왜 지원기준 달랐나”


6일 박인호 대표는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그룹사의 부실경영에서 촉발된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다만 채권단이 대우조선과는 다른 불공정한 원칙을 내세운 게 문제라고 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박 대표는 한진해운이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희생양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부실지원 의혹을 규명할 국회 청문회를 의식해 한진해운 법정관리행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이 탓에 한진해운 예측과 대응이 늦어져 물류대란이 빚어졌다는 지적이다.

서별관회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 경제 수장들이 참여하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다.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이 회의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지원이 결정됐다.

문제는 당시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부실을 상당 부분 인지한 상황에서 지원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회의 3개월 전인 지난해 7월 이미 대우조선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에 오는 8일 열릴 청문회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부실지원에 대한 책임 추궁에 진땀을 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표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탓에 짊어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한진해운 지원은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채권단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조양호 회장이 회생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에 지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다만 그들이 내세운 지원 원칙이란 게 애초부터 불분명했다는 게 문제다. 한진해운을 살리는 데 1조원이면 됐다. 그런데 대우조선에는 그 수배에 달하는 돈을 근거 없이 지원했다.”

◇ “한진해운 법정관리, 기업 넘어 역사 걸린 문제”

박 대표는 해운산업이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대한민국 해운업의 역사와 부산항의 의미를 얘기할 때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박 대표는 한진해운 우량자산이 현대상선에 인수된다거나, 다시 회생절차를 밟는다 해도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의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제와 부랴부랴 지원대책을 내놓고 있다. 결국 호미를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이미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국제적인 화주 네트워크와 신뢰를 한꺼번에 잃게 됐다. 30~40년 역사가 1조원 때문에 없어진 것이다. 현대상선을 포함해, 고려와 흥아해운이 한진해운의 입지까지 올라가려면 앞으로 수십 년은 걸릴 것이다.”

박 대표는 부산항만공사(BPA)가 3000억원 가량을 출자하는 등 부산 각계 단체가 한진해운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BPA와 부산시 관계자들과 이 같은 안에 대해 상당부문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7일 대한항공과 금융위원회 사옥 앞에서 부산시민단체와 연합해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이슈 파이팅’을 통해 한진해운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대책 등을 대한민국 전 국민이 알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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