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투합 야권, 청·여당·재계 반발 뚫어야…내년 대선 정국서 판가름 날 듯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마지막 비대위원회의를 마친 뒤 당직자들로부터 받은 감사패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더민주에 입당해 비상대책위 대표를 맡아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더민주는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있다. / 사진=더불어민주당

야당발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이 24일 정기국회에서 중점 논의할 34개 입법 과제를 선정해 발표한 데 이어 국민의당 역시 자체 경제민주화 법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여소야대 구도로 재편된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야당은 주요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미온적 반응과 재계의 반발 움직임 속에 전도가 그리 밝지는 않다.

 

더민주 경제민주화태스크포스(TF)가 24일 발표한 34개 중점과제에는 재계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주요 법안들이 총망라돼 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한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의회의 본분은 거대 경제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경제세력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해 경제민주화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중점과제에는 대기업 총수의 과도한 지배력 억제를 위한 법안으로 ▲기존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행위 규제 강화 ▲계열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독립 사외이사·감사 선출이 포함돼 있다. 총수일가 등이 보유한 지분에 맞게 지배력을 행사하라는 차원이다.

 

아울러 또 다른 입법과제 중 하나인 '소액주주 보호 강화' 역시 총수 지배력 억제와 궤를 같이 한다. 구체적 추진 법안으로는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전자투표 의결권 행사 의무화가 있다. 이 법안들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총수일가 전횡을 막는 등의 경영문화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불법 및 사익 편취행위에 대한 처벌도 포함돼 있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재벌 총수 전횡을 막기 위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것과 대기업 불공정 거래, 즉 반칙과 횡포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국회 강연에선 "기업 지배구조 자체를 조정하지 않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경제민주화의 초보적 단계로 이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공정성장'을 내세운다. 법인세 정상화 등에서 다소 이견이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에선 더민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과 차이가 크지 않다. 더민주 안보다 더 강력한 규제안도 상당수다. 당내 대기업 규제를 대표하는 채이배 의원은 김종인 대표안보다 더 강력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해놓기도 했다. 김 대표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야당 내에선 이처럼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이해관계가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에서도 경제민주화 필요성이 나온다. 하지만 세부 내용에선 야당의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크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김 대표를 앞세워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후퇴시키자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간담회에서 "이 정권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20개 정책을 했고 13개 법안이 통과, 7개 법안이 진행 중"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인식은 사업을 하기 싫게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사업을 하고 싶은 나라를 유지하는 게 박 대통령 경제정책"이라면서도 "더 강한 의지는 대기업 탐욕 부분은 용납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더민주를 겨냥해 "마치 경제민주화가 특정 정당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분들이 주장하는 그런 내용은 하나도 이행이 안 됐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도 지난 1월 김 대표가 더민주에 입당해 박근혜정부 경제민주화 후퇴를 비판하자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반박한 바 있다.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비서관(현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율 법안 처리 등을 경제민주화 실천 사례로 언급했다. 

 

이처럼 여야 간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의 국회 통과는 난관이 예상된다. 더욱이 국회선진화법으로 과반 의석만으로 법안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선 야당 간 조율뿐 아니라 여야 간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한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지난달 1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스위스 대통령 주최 기업인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전경련
입법 논의가 구체화될수록 재계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기존 순환출자 해소 법안과 같이 총수일가의 지배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우 반발 수위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총선 이후인 지난 6월 반박자료를 통해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을 일일이 비판한 바 있다. 전경련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해 "가공자본 형성이나 소유지배 괴리와 직접 상관관계가 없고,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규제 강화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외 대기업에서도 순환출자는 다양하게 발생하며 소유지배 괴리 현상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을 특별히 규제하지 않는다"며 일본 도요타그룹과 프랑스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 그룹을 예로 들었다. 상법 개정안에 대해선 외국계 투기자본에 의한 악용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관련 법안은 개별 그룹마다 입장이 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어 재계단체가 나서는 데 한계가 있다"며 "현재로선 개별 그룹들 움직임이 크지 않지만 국회 논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회 내 협의가 마무리되더라도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라는 벽이 남아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이 있어야 본회의를 통과해 법률안이 확정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과거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김종인 대표가 마련한 각종 경제민주화 공약을 후퇴한 전례를 비춰볼 때 야당안을 수용 할지는 미지수다. 

 

야당으로서는 경제민주화가 내년 대선에서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야당 주요 인사는 "여당 대선후보들도 결국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인사는 "정치구도를 고려하면 결국 경제민주화 실현 여부는 대선 결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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