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부가 보험재정 확충해야” vs 복지부 “보험 혜택 늘려 진료비 부담 줄이겠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비급여의 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의 정당성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 취지는 이해하지만, 급여 확대를 위해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건강보험 혜택을 최대한 늘려 국민 진료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를 줄이고 급여를 늘리는 정책이다. 여기서 비급여는 국민 치료비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치료를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면 국민 건강보험 혜택을 현재보다 늘려나가는 정책을 지칭한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제1차 전국의사대표자대회 옥외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국 의사 대표자 1000여명이 모여 보건복지부의 정책 난맥상을 질타했다.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의 전체적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전제했다. 의사도 국민인데, 국민 진료비 부담을 낮추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단, 현실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보다 국민 진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재정 확충이 시급하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예컨대 당장 복지부 계획대로 오는 4월부터 간·담낭·담도·비장·췌장 이상 소견을 확인하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에 있어 환자 본인부담률을 80%로 하려면, 재정 소요가 2018년 한 해 기준 2400억원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 실현을 위해서는 건강보험재정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요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는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국내 대다수 의료기관이 비급여 항목 수익으로 급여 항목 적자를 메우는 게 현실이다. 당장 저수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수가란 의사 등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을 의미한다. 현재 의료수가는 정부가 책정한다.  

 

의료계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현재 의료수가가 낮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복지부도 이 내용을 인정하고 있다. 국내 의료수가는 실제 원가의 70~80%대로 책정돼 있다.

 

의료계는 복지부에 대한 불신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복지부와 의료계가 합의해 공동으로 문재인 케어를 실현해야 하지만, 논의 과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10일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전국의사총궐기가 진행된 이후 복지부가 의료계와 의정협의체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9차례 회의에서 복지부는 의료계에 구체적 답변이나 약속 없이 원론적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다.    

 

특히 최근 복지부가 4월부터 상복부 초음파 보험 적용 범위를 전면 확대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것에 의료계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필수 의협 국민건강수호 비대위원장은 “손영래 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초음파 보험 확대에 대해 의료계와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행정예고했다”며 “복지부는 협의의 근본이 안 돼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오는 23일 의협 회장 선거 후 재차 협의하겠지만 4월 29일 의료계가 총파업을 하기로 잠정 예정돼 있다”며 “의사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호소했다. 

 

반면 문재인 케어가 문 대통령 공약인 만큼, 복지부는 주무부처 입장에서 시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를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청와대가 지시하는 사항에 대해 정부중앙부처가 반기를 드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문재인 케어는 국민들 진료비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당위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책이므로, 복지부가 실현에 방점을 두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분석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 현장에서 양산되는 비급여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려는 것”이라며 “국민들 진료비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복지부는 횟수‧개수‧적응증 등에 대한 급여 제한 기준에 따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던 비급여 400여개를 오는 4월 1일부터 급여화한다는 방침이다. 18일 집회에서 의료계가 이의를 제기했던 예비급여를 도입한 데 이어 점차 확대하겠다는 복지부 의도로 풀이된다. 예비급여란 직전까지 비급여 즉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던 의료행위나 치료재료를 대상으로 새롭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제도를 지칭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행위나 치료재료에 대해 환자들 본인부담률을 50%나 80%, 90%로 설정하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 입장에서 본인부담률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비급여 제도 도입이나 확대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즉,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급여 400여개에 이어 지난주 발표된 상복부 초음파 건보 적용 확대가 오는 4월 1일부터 적용되면 의료계에 직간접적으로 여파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됐지만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급여보다는 비급여 수익으로 의료기관을 경영한다고 밝혀왔다. 건보 적용보다는 건보가 적용되지 않았던 행위나 치료재료 등을 통해 수익을 내왔던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복지부가 순차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면 당장 의료기관 수익이 줄어들 것임은 불문가지다. 일각에서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이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상복부 초음파는 예비급여라고 정의하기 애매하다”면서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 적용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상복부 초음파 건보 확대는 올해 총 4차례 협의체를 운영해 도출한 결론”이라며 “의료계가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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