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등 기소중지 혐의부터 우선…뇌물공여 등 혐의 ‘글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2013.3.19 / 사진=뉴스1


미국계 투자펀드회사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리가 도주 12년 만에 붙잡혔다. 일각에서는 론스타 관련 전면 재수사를 주장하고 있지만, 법리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21일 법무부에 따르면 론스타 전 한국본부장인 스티븐 리가 이달 초 이탈리아에서 검거됐다.

법무부는 해외 도피로 기소중지 상태인 스티븐 리를 범죄인인도에 관한 유럽협약에 근거해 송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그 기한이 얼마나 걸릴지는 가늠할 수 없다.

스티븐 리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사들인 뒤 되팔아 큰 차익을 챙기고 국내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몸통’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스티븐 리는 하모 변호사를 매개로 정·관계에 각종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았다. 로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자금 흐름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을 기소하며 정부 측 불법행위는 밝혔지만, 매각의 최대 수혜자인 론스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헐값매각 수사의 곁가지로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도 드러났지만, 론스타의 불법 로비와 뇌물 공여 의혹 등은 기소도 못 할 정도의 정황만 파악됐다.

더욱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으로 기소된 변 전 국장이 2010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으며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혹평을 받았다. 수사의 또 다른 갈래였던 ‘외환카드의 허위 감자설 유포사건’도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유죄를 확정받았지만, 론스타의 모든 거래를 주도한 스티븐 리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몸통’은 기소하지 못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스티븐 리의 신병확보로 론스타 관련 의혹사건을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원칙상 기소중지 된 혐의만 수사하게 돼 있고 관련자들의 공소시효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리는 회사 자금 횡령, 탈세, 업무상 배임, 외환카드 주가 조작 등 혐의를 받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현재 반부패부에서 수사 주체를 검토하는 단계로 구체적인 수사 방향을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전면 재수사가 아닌 기소중지 혐의부터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처음 고발한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는 “당시 청구된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되면서 주가조작 공범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지 못했다”면서 “검찰이 새로운 증거나 물증을 확보해 전면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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