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일본 등 선진국도 가압류 따른 기한이익 상실 인정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은행 여신거래 기본약관 가운데 '가압류에 따른 기한이익 상실' 조항에서 가압류를 뺀 것을 두고 여전히 은행권 불만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뉴스1
은행 대출 기한이익상실 사유에 가압류를 제외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 개정안이 은행권 규제만 강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과 독일이 은행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약관과 약관심사제도를 없애거나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것과 반대로 공정위가 은행 산업을 규제한다는 비판이다.

22일 한국금융연수원이 개최한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김대규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일본에서 국내처럼 가압류를 기한이익상실사유에서 배제한 은행은 찾지 못했다"며 "독일 내 은행들도 대출자 재산상태에 본질적인 악화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계약을 해지한다. 독일이 (계약유지)기준에서 가압류를 배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기한이익상실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채무자 신용위험이 커질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채무자가 약정된 기한 내에 채무나 이자를 갚지 못할 경우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하고 채권에 대한 회수 절차에 착수한다.

지난해까지 은행은 차주 예금에 가압류가 들어오면 대출 만기전이라도 대출자에게 사전통보 없이 예금과 대출을 상계해 대출 원리금 상환을 요구(대출자의 기한이익 상실)할 수 있었다. 가압류가 기준이 됐던 셈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채무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가압류가 발생한 때가 아닌 채권에 대한 압류명령 또는 체납처분 압류 통지가 도달하거나 강제집행이 개시된 때로 변경해야 한다고 지난해 10월 이 부분을 개정했다.

공정위가 문제 삼았던 것은 은행이 기한이익상실 권한 기준인 가압류 시점이 대출 소비자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은 공정위가 가압류를 대출계약 기한이익상실 사유에서 제외한 점을 지금도 문제 삼았다. 은행 실무와 국제적 기준과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공정위 기준대로 채권 회수 시점을 가압류가 아닌 본압류로 기한이익상실 시기를 늦추면 대출시 리스크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 점 때문에 독일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은 기한이익상실 조항은 은행 고유의 권리로 인정하며 채권회수 시점을 가압류로 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 규제가 은행 산업을 규제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일본 대부분 은행은 지금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은행거래약정서 표준서식을 계속 사용하며 가압류를 기한이익상실 사유로 사용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 정부는 은행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서식을 폐지했다. 은행마다 자율적으로 가압류 통지 발송을 당연히 기한이익상실사유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일본 대형은행 중 하나인 수미토모 미츠이 뱅킹(SMBC)도 은행거래약정서에서도 법원의 가압류 통지 시점을 기한이익상실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일본신용금고협회도 가압류 통지 발송을 기한이익상실사유로 정하고 있다.

독일 내 은행들도 대출자에게 은행거래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면 은행들은 즉각적으로 대출계약을 해지한다. 여기서 중대한 사유란 분할 납부하는 원리금 지급 연체 외에도 독일 민법이 말하는 채무자 재산상태의 본질적인 악화 등으로 포괄적으로 해석한다. 김 교수는 "공정위 설명과 달리 이 경우 가압류가 특별해지사유를 배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은행이 표준약관 사용을 강제받지는 않지만 표준약관과 다른 약관을 사용하면 고객에게 알기 쉽게 표시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반강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반강제적 성격이 있는 공정위 표준약관 개정은 시장경제주체의 경제활동 자율성 제고와 규제개선 취지와 상반된다. 규제를 포괄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을 살펴보고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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