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변경으로 재무건전성 해치는 애물단지 전략…보장성 보험에 영업 집중

보험사마다 새 회계기준 도입에 따라 앞으로 저축성보험을 대폭 줄이는 대신 보장성보험과 변액보험 비중을 늘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시사저널이코노미

국내 보험사들이 저축성보험을 대폭 줄이고 보장성 보험과 변액 보험을 늘리고 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시행에 따라 앞으로 보험사는 저축성보험료를 매출에서 제외하고 보험부채를 원가에서 시가 기준으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선 중소보험사에서 증자나 채권 발행, 지점 축소 등 대책에 나섰지만 새 회계기준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11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생명보험사가 저축성보험상품 전체에서 얻은 보험료(수입)는 11조295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700억원(8.6%) 줄었다. 반면 보장성보험 보험료는 같은 기간 9조8400억원에서 10조940억원으로 2.6% 늘었다.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보험사마다 저축성보험을 중심으로 외형 성장을 해왔다"며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보험 계약을 유치하다보니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역마진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빠른 외형 성장 전략을 취해 생긴 결과"라고 설명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보험업계 총부채는 527조원이다. 여기에 평균 부담 이율은 연 4.4%다. 이 중 금리가 확정된 부채는 223조원으로 평균 부담 이율은 연 6.1%다. 저금리가 길어지면서 확정형 금리형 저축성 보험을 팔아온 보험사들이 금리 차이만큼 역마진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이에 IFRS17이 도입되면 한국 보험사들의 매출은 현재의 30% 수준까지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가 고객에게 내줄 보험금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면서 보험사 부채도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험사들이 저축성보험료를 전부 매출로 잡고 있지만 새 회계제도가 도입되면 저축성보험료로 나가는 보험금과 사업비는 매출에서 제외된다. 그만큼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IFRS17 기준대로라면 보험사가 저축성보험에서 올릴 수 있는 매출은 현재 수준에서 70%가량 떨어질 뿐 아니라 수익성 측면에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앞으로 저축성보험보다 보장성보험 비중을 늘려야 할 것"이라며 "단 기간에 수익을 내려하기 보다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성보험은 연금이나 저축보험 등 목돈마련이나 노후생활자금에 대비한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사망 보장 기능을 갖췄다. 지난해 말 기준 전 국민 중 43%(약 2200만명)가 가입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은행 예금과 비슷하다. 다만 이자에 이자를 붙이는 복리 방식으로 보험금을 산정해 인기를 끌었다. 장사가 쉽다보니 보험사마다 저축성 상품 판매로 실적을 확대했다. 하지만 앞으론 저축성 보험을 통한 영업 확장은 어렵게 돼 보장성 보험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보험업계는 특히 중소보험사가 자본확충 부담에 시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보험사도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많이 판매해 영업이익을 늘려왔다. 그만큼 회계상 부채 증가와 자본 건전성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중소 보험사마다 증자나 채권 발행 등으로 선제적 자본 확충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지급여력비율(RBC)이 150% 밑으로 떨어진 KDB생명, 흥국생명, MG손해보험 등 중소보험사들은 연내 유상증자와 지점축소, 인력조정 등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상황이다.

KDB생명은 3분기 중 2000억원 이상의 유상증자에 앞서 희망퇴직 실시, 지점 축소를 통한 경영 효율화를 단행할 계획이다. KDB생명의 RBC비율은 생명보험업계 최하위인 125.7%다. 흥국생명은 지난 1분기 5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했으나 RBC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추가 증자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 흥국생명은 140개 지점을 80개로 축소하는 계획을 발표하며 재무구조 정상화를 위해 몸짓줄이기에 나선 상태다.

보험업계에선 중소보험사들이 자본확충 수단으로 후순위채 등을 발행하고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영업력을 늘리지 않으면 대형 보험사에 계속 밀리는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중소보험사 관계자는 "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으로 문을 닫는 보험사들이 나올 수도 있다"며 "자본확충을 위해 인위적으로 돈을 끌어오는 방식은 단기적 대책에 불과하다.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영업이 잘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점과 인력을 대폭 줄이고 있다. 계속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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