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참사에 이은 화재 사고…안전 뒷전인 위험천만한 작업환경 뜯어 고쳐야

“언젠가 우리반 반장이 지나가는 말로 여기서 불나면 다 죽는다고 말했는데 듣는 순간 섬뜩했다. 이번 크레인 사고도 비극이지만 만약 불이 났다면 엄청난 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현장을 직접 보면 '불이 나면 다 죽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 사고가 났을 때 사고현장 바로 옆에 있는 해양플랜트 모듈에서 일하던 한 하청 근로자가 금속노조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인터뷰가 있은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삼성중공업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외부에선 삼성중공업에 악재가 겹쳤다며 의아해하는 분위기지만, 회사 노동자들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는 얘기다. 작업장엔 과도한 하도급과 혼재작업 등 근본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재작업은 용접, 열선 등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면 위험한 작업들이 한 장소에서 수행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10명 정도가 일할 수 있는 현장에 30명이 들어가서 각기 다른 일을 하는 식이다. 김이춘택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이런 혼재작업이 화재의 주원인”이라면서 “작업현장에서 이질적인 몇몇 업무는 지근거리에서 작업하면 사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과도한 하도급이 원청의 안전관리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고용형태뿐만 아니라 원하청 구조 자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이춘택 사무장은 “삼성중공업의 경우 본사 정규직(약5000명)은 20% 미만이고 하청노동자(약 2만5000명)가 80% 이상”이라며 “하청노동자 2만5000명은 하청업체 130개에 속해 있다.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소속이 다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직접고용이 거의 없는 고용구조 탓에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제대로 관리되기조차 어렵다. 이는 안전상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러 악조건이 상존하다보니 작은 사고도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삼성중공업의 한 하청노동자는 “작업하다 잠시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내가 들어온 출입문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었다. 출입문 반대편에서 다른 업체 작업자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잠겼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 물어봐서 다른 출입구를 찾아서 나가야 된다”고 전했다. 비상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우왕좌왕하다 큰 변을 당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화재 관련 일부 공정 작업장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고 화재가 발생한 공정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안전규정을 준수했는지, 사측의 안전관리체계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달 삼성중공업에서 발생한 두 가지 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면 언제든 세 번째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노동계가 고용노동부와 국회에 대해 삼성중공업 사망 사고의 구조적, 근본적인 원인을 조사하고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다.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뿐만 아니라 원하청 구조 등 산업구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할 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