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합의 불투명, 경영환경 악화에 공정 건립비도 부담…트럼프 이후 美정책변화도 고려해야

현대·기아자동차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높은 관세를 골자로 하는 무역 장벽, 이른바 트럼프노믹스를 공약으로 내걸은 탓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현대·기아차에게 고(高)관세는 악몽이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현대차 미국 현지공장 증설 여부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늘려줄 수 있는 기업에겐 ‘당근’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유럽 및 일본 자동차브랜드가 앞 다퉈 미국 현지공장 증설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가 트럼프발(發) 위기 대응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미국 공장 증설카드를 쉽게 빼들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 노조와 줄어든 영업이익, 불투명한 미국 무역정책 등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미국 가려다 울산 분노 살라…노조 파업 가능성

현대·기아차는 미국에 현지 공장 두 곳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앨라배마주, 기아차는 조지아주에 생산 공장이 있다. 두 곳 모두 연산 35만대 규모다. 문제는 이 두 개 공장이 현대·기아차 미국 판매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기준 현대·기아차 미국 판매 물량 대비 현지생산 비중은 각각 65%, 41%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주요 업체 현지생산 비중 평균(67.5%)에 못 미친다. 주요 경쟁 브랜드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크다. 포드, 혼다, FCA 는 각각 93.4%, 80.0%, 78.1%로 미국생산 비중이 높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9월 7일 멕시코 누에보 레온주 페스케리아시(市)에 건설된 멕시코공장의 준공식 행사를 열었다. / 사진=기아자동차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한다면 현대·기아차가 경쟁사보다 타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차가 미국 공장 증설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2공장을 건립한다면 최근 멕시코 공장을 세운 기아차보다 현대차 생산 라인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 앨러바마 가동률도 포화상태다.

다만 강성 노조가 미국 제2공장 건립결정 변수다. 현대차가 미국 2공장을 건설하려면 노조 동의를 얻어야 한다. 현대차는 생산·연구·정비 부문 하도급, 공장 이전 및 축소, 공장별 생산 차종 이관 등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2공장에서 제네시스를 포함한 주요 수출차량이 생산된다면 울산 공장과 기아차 화성, 광주 공장 물량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지난해 현대차 실적 발목을 잡았던 파업이 재발될 수 있다.

◇ 영업이익은 내리막인데 쓸 돈 늘어서야

현대차가 넘어서야 할 문턱은 노사합의 뿐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차 자금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다. 벌어들이는 수익은 점점 적어지는데 쓸 돈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기아차는 멕시코 공장 건립비로만 1조원 가량을 썼다. 여기에 현대차는 2014년 9월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하고 현재 신사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가 전장기업 인수나 연구개발(R&D)비 외 부동산에 조단위를 배팅한 건 이례적이다.

상황이 이런데 벌어들이는 이익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9월 현대차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8% 감소했고 판매량도 1.7% 줄었다. 증권업계에서는 현대차의 4분기 영업이익이 1조4428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전망도 가시밭길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악의 경영환경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 탓에 올해 현대자동차그룹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2조 비용을 추가적으로 투입해 공장을 짓는다면 주주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

◇ 미국 보호무역 주의 언제든 바뀔 수 있어…트럼프 탄핵 변수

업계 일각에서는 트럼프노믹스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미국 내 반(反) 트럼프 기류가 확산되면서, 트럼프 조기퇴진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조사한 지지율에서 44%를 기록하며, 역대 미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직전 지지율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CNN 등이 러시아가 트럼프 성추문이 담긴 증거자료를 쥐고 있다는 보도를 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후보시절 미국 대외정책 자문역할을 맡았던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11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임기 4년 동안 혼란이 지속돼 아주 심각한 스캔들이 터지거나 탄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결국 글로벌 자동차수요가 과포화에 이른 상황에서, 현대차가 트럼프 정부를 의식해 현지공장 증설을 결정한다는 건 일종의 도박인 셈이다. 5년 뒤 트럼프가 물러난 후 미국 무역정책이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압박에도 현대차가 미국 현지공장에 대해 숙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실적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다보니 관세를 포함한 각국 정책이 자동차사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며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다면 현대차 입장에서도 간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지공장 계획도 분명 검토될 것이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중·단기적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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